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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책임론

Posted March. 20, 2001 13:48   

의약분업 정책은 의료보험 재정 파탄에 직격탄을 날렸다. 김대중()정부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실패작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약품 오남용과 의료비를 줄인다는 의약분업이 정권의 핵심 개혁과제로 여겨지면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굴러간 이유는 무엇일까. --편집자주

거듭된 논란

의약분업은 김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의보통합과 함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됐다. 보건복지부는 약사법에 명시된 분업 시행 시기(99년 7월1일)가 다가오자 98년 5월 의약계 대표가 참여하는 의약분업추진협의회(분추협)를 구성했다. 분추협은 3개월 가량 토의를 거쳐 예정대로 모든 의원과 약국을 대상으로 분업을 시행키로 결정했다. 당시 장관은 김모임()씨였지만 분추협은 차관이던 최선정()현 장관이 주도했다. 분추협 안은 분업의 전면 실시라는 점에서 60년대부터 논란을 거듭해 온 종전의 분업안과 크게 달랐다. 노태우()정부의 '국민의료정책심위원회'(88년)와 김영삼()정부의 '의료개혁위원회'(97년)는 단계별 실시안을 냈다. 군사정권도 밀어붙이지 못한 분업은 94년 한약분쟁을 계기로 약사법 부칙에 시행 시기가 94년 7월99년 7월로 정해졌다. 부칙만 개정하면 얼마든지 연기가 가능했으나 정부는 추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약 오남용을 줄인다는 개혁과제에 당정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

당에서 시동걸다

의료계와 약계는 98년 11월말부터 분업을 연기하도록 청원했다. 여기에 시민단체가 반발했다. 김대통령은 12월3일 여당 주도로 의약분업을 추진토록 지시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 정책위원회는 같은 해 7월 '보건의료 효율화와 선진화를 위한 정책기획단'을 만든 뒤 보건의료분야 정책을 다듬어 12월에 발표했다. 정책기획단은 의약분업을 '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고 조제와 투약이 철저해지는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약산업과 의약품 유통에 큰 변화를 주고 의보재정 운영을 정상화하며 왜곡된 보건의료 체계를 바로잡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한다는 '찬사'를 내놓았다. 당시 국민회의 정책위원장은 김원길()의원, 정책기획단 의장은 김상현()의원, 부위원장은 이성재()의원과 김용익()서울대 교수였다. 국민회의의 방안은 병원을 강제 분업 대상기관에 포함시키고 주사제도 분업을 적용하는 등 완전분업에 더 가까웠다. 정부의 당초 구상(분추협 안)이 정치권의 영향으로 변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