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은 밝혀지고 비밀은 드러나게 마련인가. 여권 고위관계자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2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했다는 메가톤급 비밀을 털어놓았다. 수개월간 전 국민을 궁금하게 했던 의혹이 드디어 풀렸다는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충격이 크다. 현 정부가 최대의 치적으로 자랑하는 남북간의 대화와 사업이 음습한 거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고백이 아닌가.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이 곧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수사만 지켜보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국정원이 현대상선의 거액 송금 과정에 개입할 당시 원장은 현재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로 있는 임동원씨였다. 그런 인물이 남북대화를 실무적으로 주도해 왔고 정상회담 직전에 돈이 건네졌으니 정상회담 거래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임 특보와 국정원 관계자, 그리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은 즉각 진실을 밝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송금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송금이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현대측이 계속 입을 다문다면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셈이 될 것이다.
정권 교체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권력층 내부에서 중대한 비밀이 새어나온 배경도 심상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2주일 전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에 대해 현 정부가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는 문제성 발언을 했다. 노무현 당선자측과 현 정부가 손을 잡고 통치권 차원에서 사건을 얼버무리고 현대측에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가.
돈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산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기()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략적 차원에서 현정부와 차기정부가 적당히 털어 버리고 책임을 회피할 성질이 아니다. 만약 돈으로 북한을 매수한 것이 확인될 경우 대북정책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