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동네 도서관에서 ‘아빠와 그림책 읽기’라는 강좌를 들은 적 있다.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데 서툰 아빠를 위한 수업이었다. ‘그림책 읽어 주는 데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겠어’라는 생각에 처음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수업을 듣고서야 그게 착각이란 걸 깨달았다. “그림책은 그림을 읽는 것이다. 아이가 그림과 교감하며 상상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참가한 아빠들은 강사 말에 다들 뜨끔한 눈치였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의 책 읽기는 그저 책에 쓰여 있는 활자를 읽어주는 한글 교육에 불과했다. 아이가 그림책과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기다려주기보단 일주일에 몇 권씩 목표량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다. 쏟아지는 질문이 귀찮아 건성건성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날 이후 그림책 읽어주는 방식을 바꿨다.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기다려주니 아이는 주인공 표정, 하늘 색깔, 풍선 개수까지 천천히 살펴보며 호기심을 키워갔다. 아는 단어가 나오면 유치원에서 배웠던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렸다. 책 한 권을 통해 아이 세계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지켜보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여전히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어 달라는 두 아들이지만, 최근엔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빠른 속도감과 현란한 영상, 음악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숏폼’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겠다며 휴대전화를 가져간 초등 1학년 첫째는 아빠가 잠시 딴짓하는 사이 20∼30초짜리 숏폼 콘텐츠에 빠져 손가락을 계속 쓸어 올리고 있었다. 외국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장난치는 모습 등이 반복되는데 아이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하고 있었다. 이걸 왜 보느냐고 물으니 “그냥 재밌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자녀 숏폼 노출을 걱정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한국언론재단이 2023년 3∼9세 어린이 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미디어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 51.1%는 ‘자녀가 숏폼 콘텐츠를 본다’고 답했다. 여성가족부의 2024년 초중고교생 미디어 실태 조사에선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이용한 매체’로 응답자의 94.2%가 ‘숏폼’을 꼽았다. 친구와 대화할 때 필요한 인터넷·모바일 메신저(92.6%)보다 사용률이 높았다.
숏폼은 중독성이 강하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 아이 뇌는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한다. 도파민 노예가 돼 긴 시간 집중하거나 충동 조절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유아와 아동 31.7%가 숏폼을 시청할 때 자기 조절이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현상을 일컫는 ‘뇌 썩음(Brain rot)’을 올해 단어로 선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해외에선 아동 숏폼 중독과 스마트폰 과의존을 막으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정부는 13세 미만 어린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영국은 2023년 아동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온라인 안전법’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정부는 고위험군 발견과 학부모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플랫폼 기업 자율 정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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