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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면에 감춰진 007들의 활약

Posted October. 02, 2021 07:13   

Updated October. 02, 202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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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국 요원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첩보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년)에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여성요원 일사가 자신의 상관에게 내뱉는 대사다. 사전에 부여된 임무가 아닌데도 목숨을 걸고 미국 정보요원 에단을 구출해낸 이유를 ‘동맹국’에서 찾은 것이다. 국가정보 분야에서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따지고 보면 반세기 넘게 핵 확산 억제 원칙을 견지해온 미국이 이를 깨고 최근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제공하기로 한 것도 앵글로색슨 국가들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스’(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제)에서 연유한 바가 크다.

 근현대사 전공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모세의 ‘약속의 땅’ 정탐부터 최근의 미국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3000년의 세계 정보활동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이 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미영 밀월관계는 양국의 정보 협력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배경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보활동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잘 활용한 국가는 역사적으로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1차 대전 경험을 바탕으로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적극 수집해 나치와 맞선 영국이 대표적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의 암호전문 해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진주만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잠재적 위협국가의 이념과 역사 흐름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예를 들어 나치와 공산주의 이념에 정통했던 서방 정보기관들은 2차 대전과 냉전에서 빛나는 활약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탈냉전 후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선 무지했고, 이는 결국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안보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정보 실패’를 막으려면 권력자의 입맛대로 정보를 해석, 가공하는 행태를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북 화해 무드가 무르익은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부 교체를 둘러싼 국가정보원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