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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대사관저, 아름다움과 개성있는 분위기 뽐낸다

도심 속 대사관저, 아름다움과 개성있는 분위기 뽐낸다

Posted June. 30, 2018 07:31   

Updated June. 30, 201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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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인 느낌의 고층 건물이 밀집해 있는 서울 광화문 주변에는 작지만 독특한 모양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있다. 도심보다는 대학 캠퍼스에 더 어울릴 법한 모양의 건물들로 이국적인 정취를 담고 있다. 이 중에는 야트막한 돌담 너머에 있어 전체 모습을 보기 어려워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에게는 제한적으로 개방돼 방문이 쉽지 않다는 특징도 있다. 바로 대사관들이다. 

 대사관 건물은 한 나라의 외교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은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사관 건물을 국가 홍보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 생각한다”며 “대사관을 꾸밀 때는 자국과 주재국의 역사적 관계와 문화 교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반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도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올라가고, 아시아는 물론이고 북미와 유럽에서도 ‘한류 열풍’이 거세지면서 각국이 대사관을 활용한 ‘자국 알리기’에 더욱 공을 들이는 추세다.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거리, 도심 직장인들의 산책 코스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길에는 멀리서 보면 연한 갈색의 커다란 나무가 연상되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 앞에는 높이 17m, 지름 5.2m의 520년 된 회화나무(서울시 지정보호수)가 서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건물 주변에는 화강암 벤치와 분수대도 있어 날씨가 좋을 때는 편안히 커피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주말에는 이 건물과 나무를 배경으로 결혼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바로 주한 캐나다대사관이다.

 자작나무 숲과 산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캐나다대사관은 고즈넉한 건물이 많은 정동길에서도 눈길이 가는 외관을 자랑한다. 캐나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사관을 개방하는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지하 1층을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 간단한 보안 검색 절차만 밟으면 누구나 이곳을 찾을 수 있다. 

 이 공간의 정식 명칭은 ‘캐나다 정보센터’. 대사관 직원과 방문자들 사이에선 ‘작은 캐나다 도서관’으로 불린다. 캐나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 관련 영상 자료도 찾아볼 수 있다. 대사관 측에 따르면 월 150∼200명이 이곳을 찾는다. 

 정보센터는 원래 캐나다 방문 때 필요한 비자 심사가 이뤄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비자 관련 업무가 모두 인터넷을 기반으로 진행되면서 캐나다대사관이 도서관으로 용도를 바꾼 것이다. 고미진 캐나다대사관 공보관은 “국내에 캐나다 관련 자료를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캐나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찾아와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 로비에도 소소한 볼거리가 있다. 캐나다를 상징하는 동물인 대형 무스(말코손바닥사슴) 인형 ‘무철이’와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국가대표 아이스하키팀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 로비를 작은 캐나다 홍보 공간으로 꾸며 누구나 손쉽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민족대표 33인을 도왔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얼굴을 담은 동판도 눈길이 갈 만하다. 

 통상 공공기관들은 반듯하고 넓은 느낌을 주도록 건물 로비를 만든다. 캐나다대사관의 경우 로비가 다소 구불구불하고, 전체적인 건물 크기에 비해선 협소한 편이다. 건물을 지을 때 회화나무의 뿌리를 최대한 건들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다. 대사관 측은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환경 보호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캐나다의 가치관을 대사관 건물을 지으면서도 적용했다”고 강조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대사관저(대사의 생활 및 연회 공간으로 이뤄짐)는 야트막한 담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건물로 꼽힌다. 한국 근대 건축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고 김중업 선생이 설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사관저는 1962년 지어졌을 때부터 한국과 프랑스의 정서를 조화롭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한국 전통의 선과 프랑스 특유의 품위를 잘 살렸다는 분석이 많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붕은 건축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화제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건축계에서도 뛰어난 디자인을 자랑하는 건물로 인정받고 있다. 

 대사관저의 전반적인 인테리어는 모던 스타일이다. 거실과 식당 같은 주요 장소가 한국과 프랑스의 조화란 콘셉트 아래 꾸며져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가구 및 소품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배치돼 있다. 가령 프랑스 대사가 3∼5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과 담소를 나눌 때 선호하는 장소로 꼽히는 ‘작은 노랑 응접실’의 소파, 테이블, 커튼, 쿠션 등은 모두 프랑스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곳에 장식으로 놓인 가구는 과거 한의원에서 한약 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던 약장이다. 프랑스와 한국산 도자기도 같이 놓여 있다. 

 미리암 생피에르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은 “두 나라 모두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강국인 만큼 다양한 소재를 조화롭게 꾸미려고 늘 노력한다”며 “이런 방침은 대사관저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노랑 응접실은 소파와 커튼 같은 주요 소품이 모두 노란색 계통이다. 가을에는 창밖으로 노란색 단풍잎까지 보인다. 대사관저를 방문했던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가장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로 꼽는다. 

 대사관저는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건물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프랑스대사관과 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하는 ‘합동의 밤’ 행사 때다. 프랑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프랑스인 예술가, 작가, 전문가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 자리는 매월 한 차례씩 대사관저 메인 응접실에서 열린다.

 통상 행사가 열리기 2, 3주 전 프랑스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가 나가고, 이곳에서 신청을 하는 이들에게 참석 기회를 준다. 7월 11일에는 ‘600년 역사의 한국 요리 문학’이란 주제로 서울 서초구의 프랑스 음식점 ‘르 쉐프 블루’ 로랑 달레 셰프와 전설적인 왕실 요리장인 기욤 티렐의 저서 ‘타유방의 요리서’를 한국어로 옮긴 황종욱 번역가가 대담할 예정이다. 

 서울 중구 덕수궁 근처에 있는 주한 영국대사관은 ‘비밀의 정원’ 같은 느낌이다. 주변에 담이 쳐져 있고 나무와 꽃이 무성한 정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작은 수영장도 있다. 

 봄철 대사관 정원에는 영국을 상징하는 꽃인 장미가 만발한다. 최근에는 앵두나무에 앵두가 잔뜩 열렸다. 농약을 치지 않고 정원을 가꿔 이곳에서 열리는 앵두는 가볍게 물로 씻어서 먹어도 된다. 대사관 직원의 권유에 따라 맛본 앵두는 다소 시었지만 신선함은 느껴졌다. 

 영국대사관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소는 1890년에 세워진 영국대사관저다. 사무동 뒤편의 널찍한 정원 뒤편에 세워진 대사관저는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 그 자체다. 보고만 있어도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붉은색 벽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아주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은은함과 품위는 충분히 느껴진다.

 대사관저 내부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영국 대사가 주최하는 연회, 콘퍼런스, 기자회견 같은 ‘대외행사’가 주로 열리는 1층은 영국식 디자인을 담아낸 공간이다. 한눈에 봐도 벽난로, 심플한 소파와 테이블, 은은한 조명이 갖춰진 응접실은 영화에서 본 전통적인 영국 저택의 인테리어와 유사하다. 창틀도 오래된 느낌이 나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역사가 깊고, 모양도 독특하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인기 방송 프로그램인 ‘1박2일’의 서울 미래 유산 투어편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1박2일은 서울에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됐고 대사관저가 여기에 포함됐었다.   


이세형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