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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소녀의 생지옥 탈출

Posted December. 23, 201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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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굶주림과 잦은 폭행을 견디다 못해 가스배관을 타고 2층 집을 탈출한 11세 소녀의 이야기는 영화 빠삐용을 다시 보는 듯하다. 티셔츠 반바지에 맨발 차림의 소녀는 뼈에 가죽으로 도배한 듯 말랐고 팔다리는 멍투성이였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챙기던 소녀는 힘이 없어 과자 봉지조차 제대로 뜯지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친부와 동거녀, 동거녀의 친구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몇 끼를 굶은 소녀가 남긴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아무거나 먹는다며 매질했다. 동거녀가 기르는 몰티즈 강아지가 소녀와 달리 포동포동했다고 하니 지독한 비인간성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친부도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은 트라우마가 있고 직업 없이 리니지 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끔찍한 학대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소녀가 부천 소재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할 때 담임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소녀를 찾으려고 학대신고를 했지만 아동복지법상 교사는 신고의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찰은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인천으로 이사한 이후 아버지는 아예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집 밖으로도 못 나가게 했다. 아이가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지옥 같은 생활을 끝낸 건 소녀 자신이었다. 절해고도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녀는 생지옥에서 빠져나왔다.

2013년 울산과 칠곡의 의붓딸 폭행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최고 형량이 징역 5년에 불과하다. 실제 아동학대 사례를 보더라도 단순한 학대 방임이라기보다는 살인이라고 봐야 할 경우도 많다. 소풍을 보내 달라는 의붓딸을 때려 사망케 한 울산 계모에게 살인죄(징역 15년)가 적용된 데 이어 최근 25개월 된 입양아 딸을 무차별 폭행하고 매운 고추를 먹여 사망케 한 40대 여성에게도 살인죄(징역 20년)가 적용됐다. 구속된 빠삐용 소녀의 친부를 포함한 보호자들에게도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분이 풀릴지 모르겠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