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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글뤽스만의 지적 용기

Posted November. 13, 20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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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8혁명 세대를 대표하는 앙드레 글뤽스만 만큼 지적 용기를 가진 철학자를 보기 힘들다.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1991년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르비아 사태 개입에도 찬성했다. 그는 친미주의자나 친NATO주의자로 오해받을까봐 할말을 못하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이라크와 세르비아의 독재자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그런 오해도 감수했다.

글뤽스만은 1956년 프랑스 공산당원이었으나 소련의 부다페스트 침공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쫓겨났다. 68혁명 때는 마오주의자로 좌파그룹 악시옹에서 활동했다.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낙인찍히는 데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그는 1974년 출간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읽고 신철학으로 지적 전환을 감행해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함께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스탈린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신철학의 지적 용기에 푸코도 바르트도 지지를 표명했다.

글뤽스만은 반()스탈린주의를 거쳐 반공산주의자가 됐지만 우파로 돌아서기 보다는 좌우를 넘어섰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는 1979년 앙숙이던 좌파 사르트르와 우파 레몽 아롱을 불러 모아 남베트남 보트피플을 위한 대의()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1990년대 들어와 그는 이슬람에 대해 할말 하는 몇 안 되는 서구 지식인이 됐다. 911 테러 앞에서는 세상에 신이 없다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질문을 던지며 이슬람 니힐리즘이 초래할 재앙을 경고했다.

글뤽스만은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에 진솔한 응답을 하는 철학자였다. 그는 지성인을 도성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카산드라라고 정의했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 카산드라는 비록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더라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가오는 파국을 알려주는 역할을 그치지 않았다. 글뤽스만이 10일 세상을 떠났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