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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7인이 꼭꼭 숨겨둔 패션에 얽힌 비밀

작가 7인이 꼭꼭 숨겨둔 패션에 얽힌 비밀

Posted November. 15, 20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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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으로 새 신발만 신는 남자 K가 있다. 그는 인생은 대용품들의 축제야,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가장 오래된 대용품이지란 두 개의 문장을 품고 산다. 그의 비밀은 그가 열세 살 때 신은 운동화 속에 숨어 있다.

K에겐 머리 좋고 착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키가 작았지만 발 크기가 비슷해 서로 신발을 바꿔 신기도 했다. 둘은 서울로 정밀 지능검사를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도 신발을 바꿔 신었다. K는 친구에게 고백한다. 출생 신고가 늦어 열세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고 그래서 지능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진짜 머리 좋고 착한 아이는 바로 너라고. 하지만 고백 직후 버스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져 친구는 죽고 K만 구조된다. K는 착하고 머리 좋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위눌려 살며 새 신발만 신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은희경 작가의 단편 대용품의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사와 패션지 아레나옴므+가 손잡고 소설과 패션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했다. 유명 소설가 7명이 참가해 4가지 주제 들다 쓰다 신다 입다 중 하나를 선택해 단편소설 한 편을 쓰고 잡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설가들은 백일장 경연하듯 패션 소품을 정해 각자의 색깔로 단편을 썼다. 김중혁(종이 위의 욕조)은 잃어버린 가죽가방, 정이현(상자의 미래)은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 정용준(미드윈터)은 털모자, 편혜영(앨리스 옆집에 살았다)은 깔창이 남긴 족적, 백가흠(네 친구)은 하이힐과 단화, 손보미(언포게터블)는 슈트를 골랐다.

오랜 여운은 기억에서 나온다. 상자의 미래에선 첫 남자의 기억 때문에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만 보면 가슴 설레는 쉰세 살 여성이, 네 친구에선 낯선 여자의 구두를 놓고 망각 속에 가라앉은 시간까지 되돌리며 기억을 떠올리려는 여성이 등장한다.

당신의 기억 속엔 어떤 소품이 있나. 이 책을 보면서 패션을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같은 주제로 한 번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걸 보면 나에겐 역시 패션보단 문학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