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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러 여대생의 원통한 죽음

Posted December. 03, 201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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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 대학 박사과정에 딸을 유학 보낸 아버지는 최근 딸을 급히 귀국시켰다. 대학에서 전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사는 딸이 하루는 하굣길에 다리를 삐끗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주변에 있던 한 청년이 도와줬다.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했지만 딸은 거절했다. 낯선 사람에게 어디 사는지 가르쳐주는 것은 외국 생활에선 금기다. 연락처만 주고받았는데 나중에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와 학교 인근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청년은 계속 전화를 했다. 수시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딸이 피할수록 청년의 접근은 더 집요했다. 급기야 캠퍼스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은 스토커로 변했다. 만나주지 않으면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딸은 서울에 있는 아버지에게 SOS를 쳤다.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휴학하고 당장 귀국하라고 다그쳤다. 나 홀로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딸이 한국에 온 뒤에야 안도했다. 딸을 미국 대학에 보낼지, 아니면 한국에서 공부시킬지를 놓고 고민이다.

기자의 3년 남짓한 워싱턴 특파원 생활에서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가족의 안전 문제였다. 한번은 워싱턴 시내에서 늦은 저녁식사 모임 뒤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든 적이 있었다. 한적한 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섬뜩한 눈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북버지니아 주의 안전한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불안은 특파원 생활 내내 가시지 않았다. 주거가 일정한 주재원이나 외교관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판에 일시 체류자들은 오죽할까. 지난해 여름 펜실베이니아 주의 허시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과 동유럽 출신 대학생 수백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뉴욕타임스가 이를 크게 다뤘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항의한 데모였다. 여름방학 전후 4개월 일하고 한 달은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지만 영어를 배운다는 기대는 잠시, 한 시간에 7달러라는 박봉의 허드렛일에 혹사를 당했다.

한 달 반 전 설레는 마음으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가 현지 청년에게 살해된 부산의 한 여대생 얘기가 가슴 저리다. 범인은 19세의 새파란 호주 청년이었다.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어 여행하겠다는 꿈만 잃었더라도 덜 슬플 텐데, 목숨까지 잃다니. 그는 낯선 외국 땅에서, 그것도 오전 3시 30분이라는 어두운 새벽에 일하러 홀로 거리로 나섰다. 언제나,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여대생은 호주를 부산이나 제주도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오후 5시만 되면 칼퇴근해 집으로 직행하는 곳, 어두운 밤엔 절대 혼자 걷지 않는 곳,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상대의 적의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일부러라도 웃어주는 곳. 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워킹홀리데이에 참가하는 청년(워홀러)들이 한 해 수십만 명이다. 오늘도 대학생들은 세계는 넓다며 짐을 꾸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어권역인 미국과 호주, 영국에서 한국 대학생이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월 200만 원을 쉽게 버는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없다. 설거지를 하든 심부름을 하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밖으로 나가는 학생도 문제지만 대책 없는 정부는 더욱 기가 찬다. 유학할 형편도 못 되고 1년짜리 교환학생으로도 갈 수 없는 넉넉지 않은 가정의 대학생들이 영어 스펙을 쌓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서야 되겠는가. 무작정 배낭부터 쌀 일이 아니다. 여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여대생의 죽음이 너무 원통하고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