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공기관의 인사원칙 일성()으로 전문성을 내세운 건 역대 정부에서 반복돼 온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결국은 대통령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정권의 뿌리를 흔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들은 인사에 투명성 및 전문성 확보를 약속했지만, 정작 이를 위해 만든 갖가지 인사제도들은 짜고 치는 게임이라는 손가락질만 받으며 정작 필요한 전문성 있는 인재를 충분히 영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당선인이 천명한 인사 원칙에 따라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연 내 사람을 심겠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유보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당국자는 공공기관 인사는 결국 임명권자가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가능한 사안이라며 박 당선인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복돼 온 낙하산-코드인사 논란
2003년 4월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노무현 대통령은 유능하고 전문성 있는 인사를 기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추천과 공정한 선발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산하기관의 인사시스템 정비를 지시했다. 전문가로서의 식견과 개혁성을 동시에 지닌 인재로 공공기관을 채우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념에 따른 코드인사에 휘둘리면서 어느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낙하산 관행은 계속됐다. 출범 직후인 2008년 5월, 기획재정부는 낙하산의 고리를 끊고 유능한 민간 전문가를 뽑아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고소영 강부자라는 말까지 낳으며 측근 챙기기 인사를 반복했다. 현 정권 임기 만료를 불과 두 달여 앞둔 이달 들어서만 청와대 비서진 4명이 KOTRA,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감정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감사로 선임되면서 임기 막판 자리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매 정권마다 낙하산코드 인사가 되풀이되며 공공기관 기관장 및 임원 자리는 정치인 및 퇴직관료들의 노후 대비용이라는 비아냥 마저 나왔다. 본보가 2008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공모제를 통해 선발된 공공기관장 198명의 출신을 분석한 결과 공무원이 46%(91명), 민간이 26.3%(52명), 정치권은 23.2%(46명)인 반면 내부승진은 4.5%(9명)에 불과했다. 정부 부처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과 새누리당 의원당직자, 청와대 비서실 출신 등이 대부분 공공기관에 둥지를 틀었다.
무늬만 공모제 개선되나
문제는 박 당선인이 공언한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할 지다. 전문가들은 낙하산-회전문 인사를 보기 좋게 치장하는 도구로 전락한 공모제를 원칙대로 운용하면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대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 난맥의 실상은 무늬만 공모제라는 말로 요약된다. 전문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김대중 정부가 첫 도입한 뒤 역대 정부를 거치며 대상 기관도 확대되고 제도도 정교하게 정비됐지만, 그에 따른 꼼수도 진화하면서 낙하산-회전문 인사의 명분만 살려줬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위에서 점찍어둔 인사를 통과시키기 위해 추천 및 선발과정에서 뒷말 나오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해당 기관의 능력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공모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행 공공기관장 공모제는 크게 지원자 모집서류 및 면접 심사35배수 후보자 추천주무부처 및 대통령 임명 등의 절차를 거친다. 청와대가 주무부처 및 해당 기관에 배경과 상관없이 전문성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올리라고 요청만 하면 현행 제도를 건드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문성 실현은 가능하다. 황윤원 중앙대 교수(행정학)는 정부 출범 초기에 구체적인 인사 원칙을 세운 뒤 이를 바탕으로 기존 제도를 잘 운영하기만 해도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당선인 스스로가 인사권의 유혹을 얼마나 뿌리칠 지가 전문성 확보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공공기관장을 비롯해 부기관장, 감사, 임원, 주요 협회장 등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유관기관 자리는 어림잡아 30004000여개에 달한다. 대형 공기업 사장을 상징적으로 전문성이 강한 인사로 공정하게 임명한다고 해도 이른바 곁가지 인사에서 한두번 예외가 나타날 경우 당선인이 약속한 원칙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통령이 모든 인사를 챙기는 것 보다는 해당 부처가 직접 전문성 있는 인사를 발탁하거나 내부 승진 비율을 높이는 것도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