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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고 야비하다 치밀하고 치열하다

Posted May. 04, 201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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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대는 아니다. 전도연은 이 영화에서 거침없이 훌훌 벗는다. 그만 벗는 것이 아니다. 바깥주인 훈 역을 맡은 이정재도 탄탄한 나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2010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지난 1년간 세계에서 만들어진 숱한 영화 가운데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공식 경쟁 부문 후보 19편에 포함시킨 것은 그저 화끈하게 야하기 때문일 리는 없다.

배우들은 영화가 시작하고 채 20분이 지나기도 전에 옷을 벗어젖힌다. 찔끔찔끔 노출 강도를 높이면서 관객의 속을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만드는 싸구려 에로 영화와는 시작부터 다르다. 어서 저들이 섹스하기를 고대하는 관객의 바람은 일찌감치 해결된다. 상영 시간은 106분. 이제 나머지 90분 동안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여기서부터 50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이 기괴한 영화는 냉정하고 집요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헤집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한국 영화계의 괴인()으로 유명했던 고 김기영 감독이 1960년 만든 동명 작품이다. 1960년 11월 9일 동아일보는 김 감독의 하녀에 대해 K시에서 일어났던 하녀의 유아살해 실화를 번안한 이야기. 휙숀으로도 무리가 있고 심리나 성격 묘사가 거칠어 리얼리티를 찾는다면 불만스러우면서도, 줄거리 운반에 기를 쓰지 않고, 인간의 심리에 카메라를 들여다 댄 실험정신을 저버릴 수 없다고 평했다.

원작 하녀는 아내가 있는 중산층 남자(김진규)가 젊은 하녀(이은심)의 유혹을 받아 관계를 맺고 난 후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질투에 눈이 멀어 어린애를 죽이거나 쥐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하는 등 극단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결말은 계몽 영화였다. 쥐약을 먹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모든 일이 꿈이었던 것으로 맥없이 정리된 뒤 주인공은 관객에게 바람피우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50년 뒤 주인공들은 원작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점잖고 예의 바르다. 그 반듯한 태도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50년 전보다 더 깊고 넓고 견고해진 계급사회의 갈등이다. 바늘 틈 하나 찾을 수 없게 치밀하게 배치한 공간 속에서 말도 안 되는 비이성적 대화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주고받는 사람들.

장모님. 당신 딸이 낳아야 내 아이인 것 같습니까?(훈)

나도 홀딱 벗고 기다리고 있었다니까.(은이)

원작과 비교할 수 없게 더 많이 벗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임상수 감독은 50년 전보다 더 야비해진 세상을 더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이 영화의 주요 대사는 고참 하녀인 병식(윤여정)이 은이에게 말하는 아더메치.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세상의 준말이다. 50년 전 원작 하녀를 다룬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미수()했으나 주목할 실험이었다. 반세기 후 팔팔한 괴짜 후배는 잘 정돈된 화면 위에서 미수에 그쳤던 괴작()을 치밀하게 완성했다.



손택균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