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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한국살이 찡하게 보여줄게요

Posted March. 04, 2009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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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연극연습장 그린피그. 인종이 다른 20, 30대 여성 10여 명이 연기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여기서 한마디씩 주고받고 퇴장하는 거예요라고 연출자가 지시하자 2명의 여성이 동시에 묻는다. 우리나라 말로요? 우리나라 말은 다름 아닌 한국어다.

한국어를 스스럼없이 우리나라 말이라고 하는 이들은 몽골 터키 페루 스리랑카 러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왔다. 각기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벌써 한국 여성이 다 됐다.

베트남 여성 티응아 씨와 짜미 씨가 무대 중앙에 나설 차례. 티응아 씨가 다리를 절름거리며 아파요라고 말하자 짜미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디 아파요라고 물으며 의자를 가져다준다. 이들이 퇴장하자 스리랑카 출신의 이레이샤 씨가 쟁반을 들고 등장한다. 떡 사세요. 떡 사세요. 이레이샤 씨의 웃긴 억양에 다른 이주여성들이 일제히 웃는다.

이주민의 애환 보여주고 싶어

이들 여성은 이주노동자방송국(www.migrantsinkorea.net)이 만든 극단 샐러드의 창단 공연을 위해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창단 공연은 이달 말. 연출자인 윤한솔 씨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이라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겪은 심리적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극단 샐러드는 이주노동자의 고민과 애환을 담은 연극과 뮤지컬을 선보일 예정이다.

박경주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는 한국사회가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돼 있다며 이주민들이 한국 생활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문화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

이들은 3시간 동안 연극 연습을 끝낸 후 빙 둘러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어느덧 익숙해진 한국생활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터키에서 온 예심 씨가 한국의 교육열이 놀랍다며 입을 떼었다.

아이들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부모는 돈 많이 들고 아이는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그래요.

몽골 출신 서열마 씨가 공부 많이 해야 하니까 집안일 배울 시간도 없고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적다고 맞장구를 쳤다.

짜미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자기 의견을 말하기 힘들다며 거들었다.

남편에 대한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이레이샤 씨는 한국 남편들은 아기를 잘 돌보지 않는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빅토리아 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부부가 청소도 같이 하고 애도 같이 키우는데 한국 남편들은 집안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며 남편 친구들 만날 때는 나도 같이 나가는데 내 친구들 만날 때 남편은 함께 가려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말했다.

양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도 대화에 나왔다. 빅토리아 씨는 시집 식구들이 내가 태어나서 자란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 주지 않고 한국에 왔으니 알아서 적응하라는 식으로 대할 때는 서운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티응아 씨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국 남편과 외국인 아내가 서로 문화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이 차도 많이 나고 문화도 달라 싸울 때가 있어요. 국제결혼을 하고 싶다면 남편은 아내 문화를 배우고 아내는 남편 문화를 배워야 해요.

고국 그리워도 이미 한국사람

이들은 얘기가 끝나자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베트남 출신인 티응아, 짜미, 안다오 씨는 식사를 하면서 좀 더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들이 택한 메뉴는 청국장과 제육볶음. 이들은 이제 베트남 음식보다 한국 음식이 더 입맛에 맞는다면서 웃었다.

짜미 씨가 티응아 씨를 보며 운명(팔자)이 좋다고 말했다. 남편 잘 만났고 직업도 잘 잡았고 시부모도 좋다는 말이다.

티응아 씨는 2003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경기 광주시의 한 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반면 짜미 씨는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온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한국에서 행복하지만 말이 서툴러 마음속 얘기를 못하니까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는 경제적 문제로 부부가 자주 다투는데 한국에서는 그럴 일은 없다는 것. 그렇지만 언어소통이 잘 안돼 답답한 점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들은 작별 인사를 했다. 짜미 씨가 안다오 씨에게 가방 하나를 건넸다. 입는 않는 옷을 담은 보따리다. 안다오 씨가 고맙다며 웃었다. 각자 집으로 향하는 이들. 서로 옷을 돌려 입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김현지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