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그들을 패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고도 박수를 받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승부가 막을 내리자 그들은 목을 놓아 실컷 울었다. 그리고 쓰라린 말을 뱉어 냈다. 우리가 진 것은 (여러분의) 무관심 때문이었다고. 이 말은 메아리가 되어 온 국민의 가슴속에 맴돌았다. 유럽의 큰 선수와 열악한 환경이라는 이중의 적과 싸웠던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고 마침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그들은 바로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이었다.
2004년 8월 29일 그리스 아테네 헬레니코 인도어 아레나. 클럽 팀만 1000여 개에 선수는 1만여 명에 이르는 덴마크를 상대로 실업팀 4개, 선수 100여 명에 불과한 한국이 맞붙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전후반과 2차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링거를 맞아 가며 지옥훈련을 감내했던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외형적인 선수층의 규모만 놓고 볼 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 승부던지기에서 안타까운 패배를 당할 때까지 80분간 펼친 경기는 말 그대로 사투였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투지를 칭찬할 때 당시 임영철 감독은 우리가 진 것은 덴마크 국민의 성원 때문이다. 우리는 올림픽 때만 되면 잠깐 관심을 보이다 평소에는 잊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들이 다시 뛴다.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7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오륜관. 임영철 감독은 장시간 침묵에 잠겨 있었다. 25일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작전 구상 중이다.
임 감독은 2년간 대표팀을 떠나 있다 올해 5월 복귀했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분이 추천을 해 주셔서 복귀했다.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에게 주변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째는 핸드볼 팬 카페가 생겼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팀별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카페도 생겨났어요. 효명건설 등 사기업에서 핸드볼 팀을 창단하는 등 변화가 있었지요. 핸드볼 관중도 조금 늘어났고요.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오영란은 어느덧 35세의 노장이 됐다. 골키퍼인 그는 후배들을 이끌며 이번 올림픽 예선에 다시 한 번 참가하게 됐다. 사실 눈에 띄게 운동 여건이 좋아지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건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전에서 1위를 차지해 본선 티켓을 따는 것이 당면 목표다.
현 대표팀에는 2004년 대표팀 선수 중 4명만이 포함돼 있다. 허순영(덴마크 오르후스) 등 당시 멤버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임 감독은 곧 2004년 멤버들을 대거 충원할 것이다. 급격한 세대교체는 없다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들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까.
이원홍 이훈구 bluesky@donga.com ufo@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