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성호 이익()은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엎어진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망한 것은 회복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 사회는 일단 평정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비관론도 여전히 만만찮다. 우리가 과연 국내외적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데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공동체가 똘똘 뭉쳐 있어도 힘든 일인데 곳곳에 증오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고 민심은 동요하고 있다. 나라의 근간을 위협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번지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포퓰리즘이 자주 목격돼 온 중남미에서 포퓰리즘 정치가 퇴조 기미를 보인다고 한다. 내 집을 마련하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계층이 늘어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는 정치가들이 외면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미래의 수입을 미리 당겨 쓰는 지불 방식이다. 수입이 지속적으로 보장돼야 신용카드를 계속 쓸 수 있으니까 사용자들이 눈앞의 인기 정책보다 경제적 안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용카드가 허상을 바로 보게 만든 셈이다.
한국의 40대 이상은 배고픈 시절을 거쳤던 사람들이다. 가난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참아 낼 줄도 안다. 만약 경제가 지금보다 후퇴한다면 누구보다 괴롭게 느낄 사람은 젊은 세대일 것이다. 생활수준의 갑작스러운 후퇴는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중남미의 반()포퓰리즘 움직임은 그들의 뼈저린 경험이 배어 있는 것이기에 흘려 넘길 일이 아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사람들이 예의를 차리고 수치()도 알며 나라가 제 모습을 갖춘다는 뜻이다. 조선 초기의 개혁정치가 정도전 역시 정치는 백성의 의식을 풍족히 해 주는 것이라고 꿰뚫었다. 오늘의 혼란상은 정권의 경제 정책 실패에 큰 책임이 있다. 국민도 정치와 정치인의 옥석()을 가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중남미와는 다르게 고통을 겪지 않고도 깨달았어야 했지만 이미 고통이 크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