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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악 500년, 북악 500년'

Posted August. 15, 2003 21:51   

광복절 아침 인왕산() 정상에 오르니 고려와 조선 왕조의 진산(나라 및 수도의 큰 산)인 개성 송악산()과 서울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 개성에 다녀온 문인들은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아침 송악산 어느 자락에서도 남녘의 북한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미완의 광복을 안타까워할 동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야사() 한 토막. 고려 왕조 탄생의 정신적 지주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 스님이 전국을 돌다 송악에 이르러 일대에 왕기()가 서려 있어 장차 도읍이 될 대명당()임을 알아차렸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하면서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물었다. 도선이 천년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북한산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는 황급히 아, 아니오. 한산(북한산의 옛 이름)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는 474년 만에 멸망해 한양에 도읍지를 넘겨야 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당초 새 도읍지로 생각했던 곳은 계룡산() 일대였다. 답사차 이곳에 온 무학()대사가 이 산을 보고 금계포란형()이요 비룡천형()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신도안()은 바로 새 도읍이란 뜻이다. 그러나 수도는 중앙에 있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건의와 왕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흙 한줌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1년여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지금도 신도안 일대에는 왕궁 공사를 벌였음을 말해주는 도량과 주춧돌이 100여개나 남아 있다. 무학대사가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려 했다가 한 농부에게서 이곳에서 십리를 더 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북한산 자락의 북악() 밑에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짓게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1392년 개경에서 창건한 조선왕조는 1394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겼고, 518년 만인 1910년 경술국치로 멸망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58년이 지난 2003년 8월 15일. 보수와 진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따로 집회를 열어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애국선열이 피땀 흘려 세우고 일으킨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애국가의 한 구절처럼 마르고 닳도록 지속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