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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민주주의 맞나

Posted October. 21, 20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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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는 워싱턴 인근 아파트에는 연방정부 공무원이 많이 산다. 최근 두 주일 동안 아파트 여기저기서 뚝딱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로 직장에서 일시 해고된 입주자들이 모처럼 집 안 수리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열린 셧다운족() 위로 파티에 가봤다. 겉으로는 모처럼 쉬게 돼서 즐겁다며 건배를 하지만 폐쇄 사태가 얼마나 갈지 몰라 다들 불안해했다. 셧다운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서 남편 얼굴을 봐야 하는 부인들 사이에서는 빨리 내 남편을 다시 직장으로 불러 달라는 하소연이 많았다.

이날 모인 미국인에게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는 불만과 당혹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끝없이 이어지는 정쟁()에 대한 자조도 섞여 있었다. 한 입주자는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애들 성적표의 최하 등급인 개선 여지 무척 많음 도장을 받아도 시원찮다고 말했다.

셧다운과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 해결로 미국인들의 불만은 일단 가셨겠지만 최고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이런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창피함은 오래갈 듯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부 운영의 기본적 합의에도 이르지 못해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것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미국의 위상 추락을 재촉하는 자폭 행위에 비유한다.

그런데 디폴트와 셧다운이 미국의 위상 추락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의 혼란을 유발하는 중대 사태임에도 다른 나라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뒤에서야 미국의 곤경을 은근히 즐기며 불만을 토로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국제통화기금(IMF)과 다른 나라의 공식 반응은 미국은 이번 사태를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는 미지근한 충고가 전부였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경제위기 해결사 역할을 자임해왔다. 위기를 겪는 나라에 IMF를 통해서 또는 직접 나서 극약 처방을 제시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위기 중재자인 미국이 정작 위기의 주인공이 됐을 때는 리더십을 발휘할 주체가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 쓴소리를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나라는 없었다며 외부 압력의 부재가 미국 정치권으로 하여금 더 정쟁을 장기화하고 책임 떠넘기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셧다운과 디폴트 사태가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 정치권 갈등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가 충고할 소지는 크지 않다. 자칫 내정 간섭으로 비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재정 문제를 놓고 주기적으로 벼랑 끝 대치를 일삼으며 세계경제 위기감을 조장하는 미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유일하게 초강력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지만 정치경제 질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크게 못 미치는 중국의 충고를 미국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미국은 결국 옳은 길을 간다. 비록 틀린 길을 모두 가본 후에야 옳은 길을 찾아 가지만 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조용한 여정()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모두 포용하는 시끄러운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치 시스템이 보여주는 혼란상은 민주주의 과정이라기보다 국가적 에너지의 소모전일 뿐이다. 미국에는 진정하고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나라가 필요하다. 미국은 진심 어린 충고는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