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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레 달리는 증기기관차… 근대화가 야기한 소외와 상실

입력 | 2026-06-25 04:3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 〈134〉 기차와 청산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기차의 꿈’(2025년)에서 기차는 근대화가 만들어 낸 변화의 속도와 폭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를 보며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黃玹·1855∼1910)의 다음 시가 떠올랐다.

20세기로 넘어설 무렵 서구 열강과 일본은 조선의 철도를 두고 경쟁했고, 결국 일본이 철도부설권을 확보하게 된다. 철도 부설이란 미증유의 토목 대공사는 조선의 토지를 강탈하는 한편, 노역에 동원한 백성들을 착취하기까지 했다(정태헌, ‘한반도철도의 정치경제학’). 이 작품이 지어진 1909년엔 경인·경의·경부선 등이 개통돼 일본이 한반도 철도를 장악했다. 당시 구례에 살던 시인은 중국 망명 중 일시 귀국한 김택영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요란스레 기적(汽笛)을 울리며 달려가는 증기기관차를 보고 위와 같이 읊었던 듯하다.

시에선 특히 까만 증기기관차를 표현한 큰고래(長鯨)와 자연의 불변성을 나타낸 청산(靑山)이란 시어가 인상적이다. 일찍이 이백의 시에서 물리쳐야 할 막강한 외적을 의미했던 큰고래가 왜구(일본)를 떠올리게 한다면(‘臨江王節士歌’), 청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사의 격변을 감내해 온 우리 강토를 상징하는 듯하다. 김택영도 일본을 큰고래에 빗대 읊은바 있는데(‘贈丁介石’), 기차는 조선 침탈을 위해 철도를 확장해 나간 일본의 야욕을 연상시킨다.

영화 ‘기차의 꿈’은 문명 변화와 거리를 두고 숲속의 은둔자로 살아가는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을 다룬다. AP 뉴시스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거리를 둔 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철도 노동자이자 벌목꾼인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을 다룬다. 영화에선 산림 감시원 클레어와의 대화를 통해 시류를 따르지 않고 상실을 견뎌내는 삶도 세상을 지탱하는 역할의 하나임을 드러낸다. 시인 역시 혼탁한 현실에 염증을 느껴 관직에 나가지 않았지만 시대의 문제를 직시했다.

영화와 시는 각각 기차란 표상을 통해 근대화가 야기한 소외와 상실을 성찰한다. 영화 속 로버트가 자신의 가치를 더 이상 찾기 어려운 세상의 격변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면, 시인은 외세의 침탈과 국권 상실의 현실 앞에 절망감을 느꼈다. 영화가 근대화의 물결 속 사라져가는 옛 삶의 방식에 대한 송가(頌歌)라면, 시는 몰락해가는 조선의 현실을 바라보는 재야 지식인의 고뇌를 담았다.

우리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된다. 영화 마지막 로버트는 경비행기에 탑승하여 거대한 자연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삶에서 붙잡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시인도 격변하는 현실 속에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세상사의 질곡마저 견뎌낸 청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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