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진 경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광고 로드중
2024년 2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된 지 19년 차에 응급실 당직을 다시 서면서 서부경남의 여러 곳에서 이송된 자살 시도 청소년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부모와 면담하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해결책을 모색했다. 청소년기에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향후 그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기에 내원한 환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늘 부족함을 느꼈다.
통계만 봐도 서부경남 지역 소아·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2024년 1월부터 올 5월 초까지 경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에 자살 행동으로 내원한 10대는 모두 115명. 이 중 11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지역의료 최전선에서 일해 온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깊은 무력감과 사회적 책무를 동시에 느꼈다.
성인 환자의 경우 깊게 뿌리박힌 ‘자살 사고’를 치료하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막 정신건강 위기를 겪기 시작한 소아·청소년들은 다르다. 부모와 학교, 지역사회의 지지 체계를 통해 얼마나 신속히 치료로 연계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천차만별이다. 조기에 적절한 개입이 이뤄지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하기도 한다.
광고 로드중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고민하던 중 동료 의사로부터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았다. 바로 학교 현장으로 찾아가는 전방위적 개입이다.
올 하반기(7∼12월)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경남형 학생 정신건강 거점센터’는 이런 절박함에서 출발했다. 경남도교육청이 설계한 이 사업은 우울, 불안, 자해, 자살 시도 등 위기를 겪는 학생들을 위해 전문가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모든 사례를 점검한 뒤 필요한 경우 학생과 보호자를 대면해 상태를 진단하고 즉시 전문 진료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경상대병원이 서부경남을, 창원경상대병원이 동부경남을 맡는다.
아이들의 정신건강 위기는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정의 비극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대응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청소년의 무너진 마음을 돌보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구하는 일이다. 미래 세대의 안전망을 만드는 일에 더 이상의 지체는 없어야 한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