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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정치에 나서는 이유… “못난 인간에게 지배 받는다”는 모욕감[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입력 | 2026-06-22 23:00:00

‘참된 통치자’의 덕목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소크라테스(왼쪽 동그라미)와 플라톤(오른쪽 동그라미)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토론 모습을 담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플라톤의 ‘국가’는 철학이나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거나 내용을 들어봤을 법한 고전이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란 말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는 플라톤의 경구라며 선거철마다 인용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바로잡아야 할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우선 이는 플라톤의 말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정확하게는 ‘국가’ 제1권에서 정의가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약자를 위한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에 등장한다.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제정하는 것을 정의라고 한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피지배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통치자가 취해야 할 정의라고 봤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훌륭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훌륭한 의사에겐 의술로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일이며,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의술의 대상이 환자이듯 통치술의 대상은 국민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추구하지 않고 통치의 대상인 국민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즉, 다스림을 받는 약자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다.

6·3 지방선거 당일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DB

소크라테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탁월한 통치자가 정치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에 있었다. 여기서 고려할 수 있는 세 가지 보상은 돈, 명예, 그리고 벌이다. 돈과 명예를 통해 훌륭한 사람이 통치하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훌륭한 통치자는 명예를 좇거나 돈을 욕망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통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고용인이나 통치의 대가로 보상을 취하는 도둑이 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세 번째 보상인 벌이 필요하다. 위대한 통치자가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려면 수치심이라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일깨울 때 왜곡돼 자주 사용되는 문장이다.

훌륭한 사람이 통치를 맡게 되는 이유는 돈과 명예와 같은 적극적인 이익이 아니라, 나서지 않으면 받게 되는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현명한 자는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거나,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정치에 나서는 게 아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만약 훌륭한 사람들의 나라가 생긴다면 오늘날 통치를 맡으려는 것이 싸움거리가 되는 것처럼, 서로 통치를 맡지 않으려는 것이 싸움거리가 될 것 같다”고 예언한다.

계산에 밝은 사람이라면 정치를 통해 남을 이롭게 하느라 수고하는 것보다 남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선택한다. 실제로 편법을 꾀한 사람이 정의롭게 사는 사람보다 이익을 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트라시마코스의 시각에서 보면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아야 좋은 것(이익)을 많이 취할 수 있다. 반면 소크라테스가 볼 때 진실로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편익보다 다스림을 받는 쪽의 편익을 생각한다. 이를 전제로 소크라테스는 크게 보면 올바른 사람이 이끄는 삶이 국민들에게 더 유익한 삶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플라톤 ‘국가’의 가장 오래된 판본(1807년) 첫 페이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둘째, 플라톤이 구상한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통치 방식이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는 아테네 민주시민에 대한 독려가 아닌 통치 능력을 지닌 현자와 철인, 통치자를 향한 요구였다. 따라서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문구를 현대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일은 잘못됐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의 자질과 태도를 문제 삼는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에서 역설은 아무도 자발적으로 통치자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인정치에서 철인은 약자의 이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자질(통치술)을 갖췄지만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국민의 요청에 의해 간택되는 사람이다. 저열한 사람의 통치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국민의 요청에 따라 등 떠밀려 권력을 갖게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말한다. 플라톤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내가 정치를 하겠다’고 적극 나서기보다는 나보다 못한 후보자가 나왔을 때 비로소 ‘마지못해 출마한다’며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일이 더 많은 지지를 얻는 방법이 된다.

현대의 많은 철학이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만큼 고대 철학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새롭게 논의된다. 훌륭한 통치자는 국민이라는 약자의 편에 서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알며, 저열한 사람이 국가를 통치하는 위기 상황에 적극 참여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와 오늘날의 정치적 환경은 다르지만, 최선을 찾기보다 최악을 막으려는 점에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더욱 필요해 보인다. 그리스에서는 탁월한 통치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자신보다 못한 이의 통치를 받는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이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비단 통치자 자격을 갖춘 사람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벌을 줄 것이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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