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을 향해] ㈜광희
광희 용해장 내 작업 현장. 광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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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경서동에 위치한 광희 공장 전경. 광희 제공
전쟁 직후 광희동 골목에서 시작된 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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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회사는 시대와 함께 변신을 거듭했다. 1960년대 피아노 프레임, 1970∼80년대 주철제 보일러와 자동차 몰드로 사업을 넓혔다. IMF 외환위기의 충격파 속에서도 광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 수출용 대형 펌프 케이싱, 일본 수출용 대형 모터 케이스로 돌파구를 열었다.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 것, 그것이 광희가 73년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허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공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1970년대 회사를 물려받은 뒤 지금까지 약 50년을 현장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공장이 집이었습니다. 쇳물 냄새가 제 삶의 냄새였죠.”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시작된 그의 경영 철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선박 엔진 ‘실린더 라이너’ 완제품 사진. 광희 제공
선박 심장부를 만드는 기술, 실린더 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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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가 실린더 라이너 개발에 뛰어든 계기는 HSD엔진(현 한화엔진)의 제안이었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허 회장은 수년에 걸친 인증과 테스트 과정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납품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는 한화엔진, HD현대중공업 등 국내 주요 조선·엔진 기업과 협력하며 안정적인 공급망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이 산업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수십 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감각이 기계 이상의 정밀도를 만들어냅니다.” 쇳물 주조부터 대형 가공, 정밀 품질 검사까지 모든 공정이 숙련된 사람의 손과 눈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순 자동화가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70세 넘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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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산업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서는 솔직했다. “70년 된 회사가 지금도 저 상태라는 걸 보면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업종 자체가 저럴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고된 작업환경, 인력난, 자동화의 한계, 원자재 가격 변동은 어느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허 회장이 현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래도 직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같이 사는 인생, 가족이 지키는 공장”
[인터뷰] 허경욱 ㈜광희 회장
㈜광희에는 20대에 입사해 70세가 가깝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임직원이 있다. 40년, 50년을 함께 버텨온 얼굴들이 지금도 현장을 채우고 있다. 허경욱 회장은 오랜 동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20대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없었으면 이 회사도 없었습니다.”억지로 굴리는 조직이 아니었다. “시켜서 하는 일은 오래 못 갑니다. 같이 편하게 일할 수 있어야 사람이 남아요.”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같이 사는 인생인데, 가족이지 뭐.”
내국인 취업 기피와 인력 고령화 속에서 광희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현장을 꾸려가고 있다. 한국어 교육을 자체 진행하고 오래 일한 외국인 직원은 중간관리자로 키운다. 기숙사와 생활 환경도 직접 챙긴다. “말이 통해야 일이 되고, 일이 돼야 사람이 붙습니다. 그 기본부터 챙긴 겁니다.”
6·25전쟁 직후 광희동 골목에서 가마솥을 만들던 손길이 이제는 전 세계 대양을 누비는 선박 엔진의 심장부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쇳물을 녹이기 시작해 73년, 허 회장이 지켜온 현장은 한국 제조업 뿌리산업의 살아 있는 연대기다.
그 불꽃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김인규 기자 anold3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