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돈의 수명을 늘려라[김동엽의 금퇴 이야기]

입력 | 2026-06-21 23:00:00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본래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에서 유래한 용어다. 경기 종료 직전 패전 직전의 팀이 역전을 노리고 전방을 향해 무모하게 던지는 초장거리 패스를 뜻한다. 성공 확률이 극히 희박한, 그야말로 ‘막판 올인’ 전략이다.

영화는 노후 대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많은 직장인이 노후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은퇴의 기로에 서서 ‘헤일메리 패스’를 던지곤 한다. 노후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시간은 촉박하니,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대안에 위험한 올인을 감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식축구에서 던지는 헤일메리 패스가 대부분 상대팀에 가로채기 당하듯, 인생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패스 또한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다.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마지막 순간에 기적을 바랄 게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통해 경기 초반에 승기를 잡아야 한다. 그러면 인생 후반 짜릿한 역전의 묘미는 없어도 평안한 노후를 맞을 수 있다.

●평균 수명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다. 앤디 위어가 쓴 소설 중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은 ‘마션’도 있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다. 지구와의 통신은 두절됐고 다음 탐사선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와트니에게 남은 식량은 ‘감자’가 전부다. 그는 감자의 용도를 둘로 나누었다. 한쪽은 당장의 생명을 유지할 식량으로 삼았다. 다음 탐사선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까지 남은 일수를 고려해 감자를 안분한 것이다. 그리고 탐사선이 제때 오지 못할 때에 대비해 다른 쪽 감자로 농사를 지었다.

직장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은퇴 생활’이라는 미지의 행성에 착륙한 퇴직자에게도 똑같은 생존 방정식이 요구된다. 은퇴자 손에 쥐인 노후 자금은 와트니에게 남겨진 감자와 같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소비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명 연장에 대비해 자산을 증식해야 한다.

●자신의 수명만큼 자산의 수명도 늘려라

은퇴자금을 전부 곳간에 넣고 곶감 빼 먹듯 빼 쓴다고 해 보자. 곳간이 먼저 빌까, 내가 먼저 죽을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은퇴자들은 ‘곳간이 먼저 비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나이 들어 자린고비 방식의 자산관리를 시작하는 은퇴자가 많다. 자린고비는 굴비가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없어질까 두려워 안 먹는 것이다.

무전장수(無錢長壽)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종신형 연금에 가입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종신형 연금 가입자는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저금리 장수 시대에는 보험사가 연금을 많이 줄 수 없다.

이 때문에 노후 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연금을 받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완전하지는 않다. 수익률이 높으면 별문제가 없지만, 은퇴 직후에 수익률이 급락하면 노후 자금이 조기에 고갈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후 자금 고갈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 미국의 재무설계사 윌리엄 벵겐이 제시한 ‘4% 안전 인출률’이 있다. 벵겐은 미국의 과거 주식과 채권 시장 데이터를 활용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파산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은퇴 기간은 30년이고, 노후 자금은 미국 주식과 채권에 50%씩 나눠서 투자한다고 가정했다. 은퇴하는 해에는 보유한 노후 자금의 4%를 인출하고, 이듬해부터 매년 물가상승률에 맞춰 인출 금액을 늘려 나갔더니 30년 이내에 노후 자금이 먼저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벵겐의 ‘4% 룰’에도 한계가 있다. 최악의 상황에도 파산하지 않는 인출률을 찾았기 때문에, 대다수 은퇴자는 막대한 자금을 남겨 두고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4% 룰을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노후 자금을 분할해서 운용하라

은퇴 기간도 문제다. 벵겐은 은퇴 기간을 30년으로 잡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늘어나는 수명에도 대비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방법으로 ‘기간 분할법’이 있다. 이는 ‘마션’에서 와트니가 감자를 식량과 종자로 나눈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

기간 분할법은 노후 자금을 두 개의 바구니에 나눠 담는다. 첫째 바구니에는 당장 5년에서 10년 동안 쓸 노후 자금을 담고, 변동성이 적은 자산에 투자한다. 이 바구니의 목표는 시장 상황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안정적인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바구니에는 주식과 같은 성장형 자산을 담는다. 늘어난 수명만큼 돈의 수명도 늘리기 위함이다. 첫째 바구니에서 5∼10년간 생활비가 나오기 때문에, 두 번째 바구니는 단기적인 시장 등락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둘째 바구니 자금을 첫째 바구니로 옮겨 담는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살아 남았던 이유는 마지막에 기적적인 패스가 성공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준비로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했기 때문이다. 노후 자금 관리 역시 마찬가지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