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바라기 음식연구가와 남성 수강생들이 함께 만든 제철 음식을 살펴보고 있다. 정성갑 대표 제공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지난 시간에는 묵은지횟쌈과 고사리·루콜라샐러드, 오징어실채볶음과 오가피무침 등을 배웠다. 간단하고 맛도 좋은 메뉴들이었다. 그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묵은지횟쌈이다. 조리법이랄 것도 딱히 없다. 광어회를 떠 와 맛있게 익은 묵은지를 곁들이고, 입맛에 따라 찍어 먹을 수 있게 된장과 간장만 곁들이면 끝이다. 한입에 쏙 들어가도록 손으로 쥐어 만든 밥에 묵은지와 광어회를 올리고 된장이나 간장을 곁들여 오물오물 씹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음식을 배우는 시간이지만 공부하듯 치열하게 하지는 않는다. 음식이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맘때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익히고,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내는 배워 왔으면 집에서 좀 만들어 보라고 채근하지만,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온 터라 딱히 무언가를 더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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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식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목적은 자립이었다. 신혼 때 빠듯하게 살림을 꾸렸던 아내는 “마음 편히 시장을 본 적이 없다. 비싸고 좋은 식재료는 턱턱 살 수 없으니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그때 음식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 밥을 안 챙기는 아내가 그렇게 서운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밥은?” 하고 묻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아내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지만 내 밥을 정성 들여 챙기지는 않는다. 이런 일로 몇 번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그 끝에 남은 것은 묘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도 성인이면서 밥, 밥 하는 게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젠 김밥도 말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파김치와 깍두기도 담그는 남자가 됐다. 만세.
지난달에는 예바라기 선생님을 모시고 스승의 날 기념 식사도 했다. 우리의 자립을 도와준 고마운 선생님. 자립이라고 썼지만 내가 홀로 설 수 있어야 가족 간의 동행도 가능하지 싶다. 남자들의 공간이라고 하면 으레 서재나 오디오룸 등을 떠올리는데, 주방이나 쿠킹클래스도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