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재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19세기 수색軍 선박 함장 이름 등 돌에 새긴 글들 발견해 탁본 작업 조선이 공식 영토로 관리한 증거 “우리 영토주권 지키는 학술적 방패”
‘沙工(사공) 朴明淂(박명득) 蔣(?)今男(장금남)’.
동북아역사재단의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통해 최근 확인된 19세기 초 조선의 울릉도 수토군(搜討軍·수색과 토벌군) 선박의 함장 이름들이다. 이를 포함해 조선이 울릉도 등을 공식 영토로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각석문(刻石文·돌에 새긴 글)들이 울릉도에서 새롭게 발견됐다.
탁본 명장 흥선 스님(오른쪽)을 비롯한 동북아역사재단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단이 울릉도 태하리 학포마을에서 1882년 이규원 울릉도검찰사 일행이 남긴 ‘임오명 각석’의 탁본 작업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광고 로드중
이 명문 옆에서 ‘軍O 鄭OO 李OO’라고 쓰인 글도 새로 확인됐다. 군 관련 직책을 가진 인물들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태하리 각석에선 이 밖에도 ‘金(김)’자와 또 다른 ‘金’자, ‘江陵(강릉)’ 등의 자획이 새로 확인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이번엔 일정 문제로 여기까지 탁본을 하진 못했지만, 추후 수토 활동 관련 인명 등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17세기 말부터 약 200년간 수토관이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재단의 이번 조사에선 각석문을 명확하게 판독하는 성과도 있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태하리 ‘광서명 각석’(1890, 1893년)에서 기존 ‘使(사)’ 등으로 읽던 글자는 ‘侯(후)’로 봤고, ‘功(공)’이라는 의견이 있던 글자는 ‘切(절)’로, ‘蕩(탕)’으로 읽던 글자는 ‘蒭(추)’로 판독했다.
이에 따라 ‘聖化東漸我侯西來誠切祝華惠深求蒭(성화동점아후서래성절축화혜심구추)’ 문구는 “성스러운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우리 수령은 서쪽 육지로부터 부임해 왔도다. 왕화(王化)를 받들고자 하는 정성은 지극하였으며, 백성을 기르고 돌보는 은혜는 깊고도 컸도다”는 뜻으로 파악됐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조선 말 울릉도의 통치와 주민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에선 태하리 ‘이보국 각석’에서 수토군 선박의 책임자인 사공(沙工) 2명의 이름을 새긴 각석문도 발견됐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광고 로드중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