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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하늘 저 멀리, 무지개여 걸려다오. 강아, 내 마음을 전해다오(イムジン河空遠く 虹よかかっておくれ. 河よ想いを伝えておくれ).”
―북한 노래 ‘임진강(림진강)’의 일본어 번안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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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 공동기획으로 마련됐다. 앞서 일본에선 ‘언제나 곁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의 80년’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양국에서 전시된 작품이 적잖게 다른데, 임진가와는 두 전시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임진강’ 노래가 강렬했던 탓일까. 나는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중에도 머릿속에서 그 노래를 떨쳐내지 못했다. 결국 전시를 모두 관람한 뒤 이 노래에 이끌려 다시 ‘임진가와’ 앞 의자에 앉아 한국어 자막을 한동안 바라봤다. ‘과연 이 노래가 지닌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영상은 일본 도쿄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 전직 포크가수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키 세이코(大木晴子) 씨가 20세였던 1969년 5월 8일을 회상하며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비롯한 평화운동과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는 포크송의 유행과 맞물려 젊은이들이 반전 포크송을 부르며 거리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포크 게릴라’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오키다. 그녀는 ‘임진강’의 기억을 더듬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또 같은 세대의 후루카와 고(古川豪) 씨는 ‘임진강’의 일본어·한글 가사를 손글씨로 적어 둔 낡은 노트를 펼쳐 보이며, 이 노래가 오사카와 교토에서 불리기 시작해 포크 게릴라와 함께 도쿄로 퍼져 나갔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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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치기!’(2006년)는 이 노래에서 출발했다. 1960년 교토를 배경으로 조선학교 학생들과 일본인 고등학생들의 대립과 우정, 사랑을 그린 청춘영화다. 일본어 ‘임진강’ 가사를 쓴 마쓰야마 다케시(松山猛) 씨의 자전적 소설 ‘소년 M의 임진강’이 원작이다. 여기에 제작자인 재일동포 출신 이봉우 전 시네카논 대표와 그의 여동생이 겪은 실화도 반영됐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코우스케가 조선학교 짱 리안성의 여동생 경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그녀가 연주하던 ‘임진강’을 외워 기타를 치며 부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임진강’을 부르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는 국가와 국가를 선을 그어 나눈다. 또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대립하고 싸우며 때로는 전쟁까지 벌인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임진강’과 같은 노래를 불러 왔다. 한국에서, 북한에서, 일본의 재일동포 사회에서, 그리고 일본인들 사이에서. 물론 언어와 표현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리듬에 흥을 느끼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아끼며 사람을 사랑하는 내용의 노랫말에 공감한다. 당장 하나가 될 순 없겠지만, 하나의 노래를 매개로 같은 감성을 나누다 보면 이어질 수 있다. ‘임진강’은 그런 힘을 지닌 노래다.
2023년 9월 나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평화곤돌라’를 타고 처음으로 임진강을 건넜다. 저녁 무렵 전망대에서 본 임진강은 반짝이는 수면으로 아름다웠고, 저절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시려 왔다.
1945년 이후 한일 양국의 미술은 생각보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국경은 존재하지만, 예술은 그 선이 무색할 만큼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임진강’이라는 한 노래에 담긴 역사 또한 그만큼이나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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