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문제는 이들이 입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원 후 이전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장기 치료나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고령층에게 인플루엔자는 단순한 독감이 아니라 삶의 기능과 독립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질환에 가깝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전체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의 83.1%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독감 예방 정책은 여전히 ‘얼마나 많이 접종했는가’에 머물러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시행 중인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층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률이 80%를 웃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고령층은 여전히 중증으로 악화해 입원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 로드중
해외 주요국에선 이미 고령층 특성을 고려한 예방접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고면역원성 백신을 중심으로 예방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고용량 백신을 도입한 미국, 영국, 호주 등은 65세 이상 고령층의 예방 효과가 42∼55%로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올해부터는 일본, 대만 등 한국과 고령화 수준이 유사한 아시아 국가들도 고면역원성 백신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국가예방접종에 고면역원성 백신을 도입하는 것을 백신 예산 증가 등 단순히 비용 부담 측면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질병 예방 효과와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고령층 인플루엔자는 입원 치료비뿐만 아니라 재활 치료, 장기 요양, 보호자 돌봄 부담 등 사회 전반에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의 건강보험 진료비는 50조 원을 돌파해 전체 진료비의 44.9%를 차지했다. 예방에 대한 적절한 투자는 중증화와 입원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고령자 의료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고령층 예방 정책은 단순한 접종률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경제, 의료, 문화 등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다른 선진국처럼 감염병 예방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환자의 삶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 의료체계의 부담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선택이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