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가고시마 크루즈
일본 가고시마만 사쓰마반도 끝자락에 우뚝 선 카이몬다케산의 일몰. 모양이 후지산과 비슷해 ‘바다의 후지산’ 또는 ‘사쓰마후지’라고도 불린다.
침대가 좌우로 살짝 미끄러지듯 요동했다. 늦게 든 선잠이 달아났다. 창틀이 2~3도 기울기로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너울까지는 아니지만 미명의 바다가 뒤척인다. 배수량 2만7000t 크루즈선(船) 이스턴비너스호(號) 9층 객실. 암막 커튼을 걷어 창밖을 보니 어둠이 깊다. 나가사키(長崎) 연안까지 서너 시간 남았다. 같은 항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400여 년 전 마카오에서 선교사들을 태우고 출발한 정크(戎克)선. 수십 t짜리 돛단배는 이 바다를 어떻게 견뎠을까. 가톨릭이 금지된 땅, 신앙의 불씨를 살리려고 목숨을 건 그들 마음은 얼마나 흔들렸을까. 커튼을 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 나가사키, 근세의 시작
크루즈선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근해에서 세관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배가 서서히 나가사키항(港) 마쓰가에 국제 부두로 향한다. 왼쪽 방파제 너머 해안 큰 바위에 하얀 여인이 서 있다. ‘곶의 마리아상(像)’이다. 성모 마리아가 안전을 기원한다.
나가사키항 초입 가미노시마 해안 바위에 서 있는 ‘곶의 마리아상’. 그 뒤로 가미노시마 교회당이 보인다.
나가사키는 일본 근세(近世)가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근세는 16세기 초 종교개혁으로도 촉발됐다. 교황청에 반기를 든 개신교의 등장은 가톨릭 선교의 눈을 해외로 돌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심의 예수회가 대표적이다. 예수회는 ‘세계의 끝’이라던 일본에까지 진출했다. 한때 신자가 60만 명에 이르던 일본 가톨릭 중심은 나가사키였다. 17세기 접어들며 도쿠가와 막부의 박해와 금지령(1614년)으로 신자들은 믿음을 숨기거나 버려야 했다.
수증기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가사키 운젠지옥.
그 박해가 ‘운젠(雲仙)지옥’에서도 벌어졌다. 1991년 대폭발한 활화산인 운젠산 자락. 하얀 수증기와 코를 자극하는 냄새, 부글부글 끓는 물이 여기저기서 솟는다. 달걀 썩은 내라고 하는데 요즘 사람이 알기는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유황 온천 지대다. 식물은 살 수 없고 흙과 돌은 가스와 강산성 물에 변해 옅은 회색 또는 흰색을 띤다. 옛사람들이 지옥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운젠지옥 땅 밑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물거품.
배교(背敎)를 거부하는 선교사나 신도들이 여기서 고문을 받았다. 섭씨 100도 넘는 물을 구멍 몇 개 뚫은 커다란 국자에 받아 머리와 등으로 흘린다. 고열의 고통이 길게 계속된다. 죽어 가는 신도들을 속수무책 바라보며 선교사들은 절망했을 터다. ‘어째서 하느님이 침묵하고 계시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엔도 슈사쿠 ‘침묵’, 공문혜 옮김, 홍성사, 2003)
지옥은 근방에 30여 곳 더 있다. 고문받다 죽은 청년 신자 이름을 딴 ‘세이시치(淸七)지옥’, 뜨거운 물거품 소리가 짹짹거리는 것 같다며 ‘스즈메(雀·참새)지옥’, 그 소리가 더욱 커져 사람들의 절규 같다며 ‘대규환(大叫喚)지옥’…. 유황 가스를 이기는 꽃, 철쭉이 산등성이에 피었다. 지옥 사이사이를 걸으니 되레 마음이 차분해진다. 온기가 몸을 감싼다.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수증기와 물거품 끓는 소리가 인간들의 고통어린 절규와 같다는 ‘대규환지옥’.
운젠지옥에서 차로 20여 분 가면 오바마(小浜)온천 마을이다. 푸르디푸른 다치바나만(灣)을 품은 이곳에 일본 최장 족욕탕 ‘홋토훗토 105’가 있다. 길이가 105m여서 105인 줄은 알겠는데 홋토훗토는 무슨 말일까. 알고 보니 ‘핫풋(hot foot·뜨거운 발)’의 일본식 발음이다. 온천 증기로 달걀을 쪄서 판다. 열탕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껍질을 까서 먹는다. 약간 과장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나가사키 오바마 온천 마을의 ‘홋토훗토 105’ 족욕탕.
홋토훗토 105 족욕탕 상점에서 온천 증기에 쪄 낸 달걀.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추방당한 뒤 ‘횡재’한 것은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령을 내렸지만 해외무역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나가사키에 만든 인공 섬 데지마(出島)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商館)을 옮기고 거기서만 교역을 허락했다. 쓰시마(대마도) 류쿠(오키나와)와 더불어 일본이 세상을 내다보는 창(窓)이었다.
나가사키 데지마. 옛날 데지마섬 네덜란드 상관 거리와 건물을 재현해 놓았다.
데지마 한쪽 끝에 미니어처로 제작한 과거 데지마 거리와 건물들.
현재 데지마는 당시 상관 건물들과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 눈길을 끈 건 역대 네덜란드 상관장(長) 명단이 적힌 액자였다. 1610년부터 1850년까지 2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수익을 좇았지만, 일본으로서는 서구 과학기술의 전령이었다. 18~19세기 청진기, 보청기, 천문 관측기, 시계 같은 기계와 해부학, 생물학 서적 등이 전시돼 있다. 적긴 하지만 일본 지식인과 정치인은 선진 지식을 야금야금 씹어 소화했다. 그 결실인 난학(蘭學)은 근대로 부르는 초대장이었다.
데지마 한 건물에 걸려 있는 역대 네덜란드 상관장 명단.
오후 6시 이스턴비너스호는 가고시마(鹿兒島)로 출항했다. 부두 건너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가 있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전쟁을 거듭 일으킬 때 전함을 많이 만든 곳이다. 도크에 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함 세 척이 건조 중이었다.
나가사키항 마쓰가에 국제 터미널 건너편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에 건조 중인 이지스함들이 보인다.
● 가고시마, 근대의 효시
가고시마는 1871년 메이지 정부가 전국 번(藩)을 없애고 현(縣)을 설치할 때까지 사쓰마(薩摩)번이었다. 사쓰마는 죠수(長州·야마구치현)번과 함께 막부 체제를 무너뜨린 메이지유신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두 지역 하급 무사 출신 3인을 ‘유신 삼걸(三傑)’이라며 칭송한다. 그러나 사쓰마가 일찍부터 서구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힘쓴 것을 배경으로 꼽는 학자도 있다(손일 ‘메이지유신의 선봉 사쓰마와 시마즈 히사미쓰’, 푸른길, 2023).
가고시마현 슈세이칸 앞에 1872년 당시 메이지 천황이 이곳을 들른 것을 기념하는 석탑이 서 있다.
사쓰마 12대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와 이복동생 시마즈 히사미쓰(久光)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을 몰고 도쿄만에 등장한 사건 이후 해안 방어와 근대화에 힘 썼다. 그 산증인 같은 곳이 종합기계공작소 격인 슈세이칸(集成館)이다.
나리아키라는 철제 대포용 철을 얻기 위해 용광로인 반사로(反射爐)를 지어 철제 대포 주조에 성공했다. 이후 반사로 주변에 무기, 기계, 조선 기술 자립을 위해 증기기관과 농기구 제작소, 제지와 유리 공장 등을 한데 모아 세운 것이 슈세이칸이다. 1865년 히사미쓰는 여기에 더해 증기기관과 서양식 공작기계를 갖춘 일본 최초의 기계공장을 가동했다(손일).
시마즈 가문 별장 센간엔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사쿠라지마.
슈세이칸이 시마즈 가문 별장 센간엔(仙巖園) 옆에 있는 점은 흥미롭다. 선진 기술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비친다. 17세기 중반에 지은 센간엔은 바로 앞 가고시마만의 활화산 섬 사쿠라지마(桜島) 전망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센간엔 경내 고양이신사 입구에 있는 고양이 조각상. 신사 안팎에 각기 다른 모양과 자세의 고양이상이 7개 있다.
센간엔 경내에 고양이신사(猫神社)가 있다. 사쓰마 가문은 임진왜란 때 1만 병력을 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당시 번주는 바다에서 시간을 알려고 고양이 7마리를 데리고 갔다. 고양이 눈동자가 2시간마다 원에서 달걀, 감 씨, 바늘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때 생존한 2마리를 모신 신사다.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교차한다. 고양이 돌 조각상들은 귀엽다.
센간엔 저택 기둥과 들보 못자국을 가린 금속 장식품 구기카쿠시. 12가지 모양 중 박쥐를 찾으면 행운이 온다고 전해진다.
1년에 700여 번 분화하는 활화산 사쿠라지마는 페리를 타고 간다. 전날 3.8km 높이까지 분화했다는데 여전히 하얗다가 희색 빛 도는 연기를 뿜어낸다. 사쿠라지마에는 6000여 명이 거주한다. 초등학생들은 노란 헬멧을 쓰고 등교한다. 시시때때로 내려앉는 화산재를 담아 따로 버리도록 노란 비닐봉지가 집마다 준비돼 있다.
육지를 향해 떠나는 페리 선상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나리아키라가 반사로를 지을 때 1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디는 벽돌이 필요했다. 벽돌은 사쿠라지마 용결응회암을 원료로 도공 심수관 가문의 자기 굽는 방식을 이용해 제조했다. 심수관 가문은 임진왜란 때 사쓰마 군에 끌려가 가고시마에 정착해 살았다. 역설적이다. 사쿠라지마는 일본 근대화의 싹을 처음부터 지켜본 셈이다.
센간엔 저택에 전시된 12대 심수관이 만든 항아리.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을 위해 제작한 것의 복제품이다.
● 낭만 가득한 환송 연주
가고시마항 크루즈 터미널 부두에서 현지 고교생 재즈 밴드가 환송 연주를 해주고 있다.
오후 6시. 부산항으로 출항해야 한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8층 갑판으로 내려가 난간 아래 가고시마 크루즈 터미널 부두를 내려다봤다. 깃발을 들고 배웅하는 주민들 앞에서 고교생 재즈밴드가 환송 연주를 한다. 은빛 재킷을 입은 60대 지휘자가 “50년 전 노래입니다만,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주제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야마토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 해군에 격침당한 초대형 전함이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스윙걸즈’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을 뒤로 하고 부두와 멀어진다.
가고시마항 크루즈 터미널에서 현지 주민과 재즈 밴드가 이스턴비너스호를 환송하고 있다. 멀리 사쿠라지마가 보인다.
배가 가고시마만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우현 저 멀리 삼각형 산이 보인다. 가이몬다케(開聞岳)다. 산 너머로 진 태양의 진홍색 역광을 받아 피라미드처럼 신비롭다. 나중에 찾아 보니 ‘바다의 후지산’이라고 불린단다. 가이몬다케 위 높이 뜬 샛별이 작별 인사를 한다. 반짝.
글·사진 나가사키·가고시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