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원에 휘둘리는 사회]〈4·끝〉 56년 묵은 ‘무조건 접수’ 규정 3회 이상 반복땐 종결 가능하지만 5년간 6433만건 중 종결 1.3%뿐 韓 ‘무조건-신속 친절 접수’ 원칙… 日-英 등은 악성민원 전화 차단 “접수 단계서 종결 절차 마련해야”
● ‘반복 민원’으로 종결, 1.3%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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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민원을 차단할 유일한 장치는 ‘3회 이상 접수 시 종결’ 조항뿐이다. 하지만 이는 내용을 살짝 바꾸거나 민원인의 명의를 바꾸는 꼼수에 쉽게 무력화된다. 부산 해운대구에는 지난해 12월 “아파트 단지에서 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사람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민원이 반복 접수됐지만, 여러 사람이 번갈아 접수했기 때문에 종결 처리할 수 없었다. 올해 2월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도 특정 단체 소속으로 의심되는 여러 명이 “(구청이 관리 중인) 동물을 직접 보호하겠다”며 민원을 170건 접수했지만 민원인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일일이 답변해야 했다.
● “규정대로 끊어내면 ‘보복 민원’ 폭탄”
학교도 마찬가지다. 전북 군산시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운동회에서 ‘음식 금지’, ‘천막 밖 이동 제한’ 등 경고문을 내걸었다. 지난해 운동회 당시 “흙 묻은 손으로 음식을 먹게 놔뒀다”, “우리 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 등 10여 명의 학부모가 번갈아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였다.
적법하게 종결 처리해도 이를 빌미로 후속 민원이나 소송을 쏟아내면 현장 공무원으로선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강원 춘천시에선 한 90대 주민이 2024년부터 “타인 소유 건물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을 반복해서 제기했다. 관련 부서가 동일 민원으로 판단하고 종결 처리했지만, 그는 이를 문제 삼아 최근까지 20여 차례 민원실을 찾아와 욕설하며 소란을 피웠다. 담당 직원은 “종결 처리해서 꼬리 민원을 감수할지, 그냥 참고 답변을 반복할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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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英은 악성 민원 전화 차단까지
영국도 민원인의 통화 빈도가 과하면 번호를 차단하거나 접촉 시간과 횟수를 제한한다. 나아가 해당 민원인의 관청 출입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호주는 민원인이 종결 처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후부턴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호주 연방 옴부즈만은 2021년 발행한 지침에서 한 반복 민원인에게 “새로운 근거를 내지 않으면 응대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사례를 명기했다.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2일 X(옛 트위터)에 “고질 만성화된 반복 민원은 민원인의 삶을 황폐화하고 행정 낭비를 초래한다”고 적었다. 행안부는 ‘3회 이상 반복’에 해당하지 않아도, ‘업무 방해 등 의도가 있는 경우’ 등까지 종결 대상 민원으로 분류하는 민원처리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악성 민원까지 수용해야 하는 ‘무조건 접수’ 원칙을 유지할지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방문·전화 반복 민원도 종결 처리하거나 접촉 단계에서 제한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해외처럼 반복 민원을 접수 단계에서 분리·종결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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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이다겸 기자 gyeom@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