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내달리다 잇단 충돌… 운전자는 ‘속도만 줄이면’ 방심 일쑤
사고 1.8배-부상자 2배로 증가
구분 없는 보행로-가변속도도 원인
“단속 강화 함께 도로환경 개선을”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초등학생들이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의 이면도로를 뛰어 건너고 있다. 이 일대엔 보행로가 미비해 어린이가 차로로 다녀야 하는 이면도로가 적지 않아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2일 오후 2시 반경 서울 동대문구 장평초등학교 앞. 하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정문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 남학생이 건널목을 뛰어서 건너다가 노란 장우산을 떨어뜨렸고, 이를 주우려 다시 도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승용차가 건널목으로 진입했다. 교통 단속 중이던 경찰이 지시봉으로 차량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면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임성민 동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스쿨존에서 아이들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운전해야 하지만, 많은 운전자가 ‘제한 속도만 지키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운전한다”고 말했다.
● 스쿨존 사고 1년 새 1.8배로이날 서울경찰청은 서울 내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49곳에서 교통 법규 위반을 집중 단속하고 계도를 벌였다. 지난해 전국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가 927건으로 전년(526건)의 1.8배로 늘어나는 등 어린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같은 기간 스쿨존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556명에서 1013명으로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경찰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이동장치(PM) 증가와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 등이 사고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후 1시 45분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단속에서만 총 171건(단속 85건, 계도 86건)이 적발됐다. 신호 위반(49건)이 가장 많았고, 이륜차·PM의 보행로 통행(18건)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스쿨존 경계에서 발생한 사고도 정확히 집계할 수 있게 된 영향도 있다.
실제로 스쿨존 단속 현장에서는 교통 법규를 어기는 도로 이용자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노원구의 한 스쿨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던 학생이 건널목을 건너려는 순간 한 전동 킥보드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회전하다가 급히 멈춰 섰다. 건널목에 사람이 있을 때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하는 수칙을 어긴 것이다. 지난해 3월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8세 초등학생이 달려오던 전동 킥보드에 치여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인근의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도 좌회전 차량이 건널목을 건너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정차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매일 초등학생 2학년 자녀를 하굣길에 데리러 온다는 최은희 씨(38)는 “학교 정문 앞에서 과속과 꼬리물기를 일삼는 차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고 했다.
● 보행로 구분 없고 ‘가변 속도’ 혼란도사고가 빈발하는 스쿨존과 인근 지역은 도로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에 가보니, 차로와 보행로가 제대로 구분돼 있지 않거나 보행로가 도로 한쪽에만 설치돼 있는 이면도로가 많았다. 이 일대에선 2024년 한 해에만 어린이 교통사고 6건이 발생했다. 한 초등학생은 보호자 없이 차로 한가운데를 걷다가 뒤에서 차가 달려오자 황급히 길가로 물러서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모 씨(65)는 “이 길은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유치원생도 많이 오가는 곳”이라며 “차량 사이로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경우가 많아 항상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스쿨존에서 제한 속도를 시간대별로 달리 적용하는 ‘가변형 속도제한’이 운전자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등하교 시간엔 시속 30km로 제한하되 통행량이 적은 심야엔 시속 40∼50km로 상향하는 방식인데, 차들의 편의를 위해 2023년 서울과 인천 등 8곳에 시범 도입된 뒤 현재 전국 약 70곳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제한 속도를 운전자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 어린이가 다니는 시간대에도 과속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찰청은 당분간 사고 위험이 큰 스쿨존에서 교통 법규 단속을 집중적으로 벌일 방침이다. 김의수 국립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과속이나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나아가 운전자가 스쿨존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멀리서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색상과 디자인 등 도로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
이다겸 기자 gye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