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베트남 호이안까지 표류해 귀환한 사건은 조선인이 가장 먼 거리를 표류했다가 살아 돌아온 실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을 만들 때 이 사건을 에필로그 영상으로 활용하기 좋은 소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극적으로 생환한 역사적 내용을 바탕으로 베트남의 전통 수상인형극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익태의 ‘지영록’에 실린 베트남 표류기는 다음과 같다. “1687년 9월 3일 김대황 등 24명은 제주도 목사가 공납할 말 3마리를 싣고 출항했다. 추자도 앞바다에서 거센 비바람과 집채 같은 파도를 만나 표류했다. 일행은 망망대해를 낙엽처럼 떠다니며 생쌀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느 날 제비가 배 위로 날아들자,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주려고 보냈다며 절하면서 살려 달라고 빌었다. 표류 31일째, 동틀 무렵 안개 속에서 섬을 발견했다. 곧이어 20여 척의 작은 배가 다가와 창과 칼로 위협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간 곳은 안남국(베트남) 호이안이었다. 안남국 관리들은 밥과 죽, 술, 고기, 차 등을 제공했으나 해칠까 겁이 나서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이 지나고 일행은 숙소 밖으로 나와 다닐 수 있게 됐다. 안남국 사람들은 일행에게 쌀과 돈을 넉넉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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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조선에 표류한 중국인을 송환한 선례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또 이익, 박지원 등 당대 실학자의 주목을 받았다. 유구국(오키나와), 중국, 대만으로 표류한 기록이 수백 건이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 말까지 일본에 표착한 조선인이 수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베트남까지 표류해 생환한 경우는 김대황 일행이 유일했다. 교류가 없던 미지의 땅에서 극적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4월 23일 한국과 베트남 정상의 배우자들이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을 방문해 우의를 다졌다. 이후 박물관 직원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실은 양국 문화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해 왔는데, 두 정상의 배우자 역시 전시를 관람하며 매우 큰 관심을 표했다고 했다. 339년 전,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시기에 있었던 따뜻한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