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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배우는 외국인이 결국 마주하는 것, 한자[콜린 마샬 한국 블로그]

입력 | 2026-05-05 23:06: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이유는 어느 때보다도 많다. 외국인들은 K팝 노래의 가사를 알아듣고 싶어 하고, K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K문학을 번역본을 넘어 원문으로 읽고 싶어 한다.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을 방문하는 꿈을 꾸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예전부터 문화적 영향력이 컸던 일본의 언어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중국어가 아닌, 특별히 한국어를 공부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아시아 언어에 호기심이 있는 서양인들에게 한국어는 결정적인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어나 일본어와 달리 한자를 외울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예외 없이 찾는 장소를 떠올려 보자. 서울 강남이나 광장시장,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등이 생각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인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은 외국인들이 광화문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뭘까. 바로 ‘光化門’이라고 한자로 쓰인 현판이다. 이러한 광경은 한자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외국인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이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오해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광화문 현판은 한국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쓰인 현판으로 교체하는 것이 국가의 위신과 관련된 시급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일제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진행돼 온 경복궁 복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역사적 정확성’이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나기 전 지어진 경복궁 내 궁궐의 현판은 조선의 양반들의 문자였던 ‘한자’로 쓰인 것이 사실이다. 국가적 자부심과 역사적 현실이 충돌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불가피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광화문에 한글로 된 현판이 없다는 점보다 더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 세 글자의 한자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도 함께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하곤 하지만, 한국인들조차 한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조언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불행하게도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어휘의 50∼70%가 한자어로 이루어진 한국어를 ‘수박 겉 핥기’식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은 영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 역시 고전어 교육이 약화되면서 학생들의 모국어에 대한 이해도도 점점 얕아지고 있다. 이는 기초적인 한문 교육에서 배운 한자조차 겨우 알아보는 데 그치는 오늘날 한국 학생들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해 온 서양인인 내 시각에서 보면, 한자 사용을 지양하는 정책이 이 나라에 어떤 혜택을 줬는지는 불확실하다. 한국어는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는데, 이를 한글 뒤에 숨기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어원도 알아야 한다. 결국 어원을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소탐대실일 수 있다.

한자를 잘 아는 한국인들은 일본, 중국, 대만의 언어와 문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한자를 외면해 잘 모르는 한국인들은 이웃 나라를 결코 관광객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최근 충북 청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 고무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한자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자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을 만나면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 해 보라고 한다. 하나는 한국이 과거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나라일까라는 궁금증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이지만, 한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다른 하나는 한국은 어느 정도까지 아시아 국가이며, 또 어느 만큼 서양 국가들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일까라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분명 서양 문명보다 중화권 문명에 훨씬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일상생활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한글로 쓰이지 않은 간판들을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도시의 거의 모든 길거리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영문 표기 간판부터 떼내면 어떨까?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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