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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어른들에게는 이 흐름이 낯설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미숙함으로 받아들인다. 조금 더 자라면 자연스럽게 하나로 정리될 거라고 믿는다. 이야기는 시작과 전개, 그리고 끝을 가져야 한다고 배워 온 결과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면이 떠올라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워버리는 데 익숙해진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길지 선택하는 기준 역시 점점 분명해진다.
이런 방식은 음악을 들을 때도 반복된다. 우리는 곡을 슬프거나 밝은 것으로 나누며 하나의 분위기를 먼저 정한다. 그래야 이해하기 쉽고 설명하기도 편하다. 한번 그렇게 나누고 나면, 그 기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느낌을 분명하게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설명을 덧붙인다. 이미 그렇게 들린다고 믿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이유를 찾아 나서는 셈이다. 그렇게 정리된 감상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다른 가능성은 그만큼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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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떠올려 보자. 널리 알려진 이 곡은 제목과 함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보다 먼저 ‘달빛’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익숙한 풍경이 감상을 앞선다. 그러나 이 이름은 작곡가가 붙인 것이 아니다. 훨씬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밤과 달빛을 떠올린다. 그 이미지는 점점 굳어져 다른 장면이 끼어들 여지를 좁힌다.
사실 다른 방식으로 들으면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오른다. 멀리서 다가오는 발걸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고요한 공간에 머무는 시간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반드시 달빛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정해진 이미지를 벗어나는 순간, 음악은 더 넓은 방향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음악을 다시 처음 들을 때처럼 마주하게 된다.
비발디의 ‘사계’도 마찬가지다. 제목은 계절의 풍경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면 음악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처럼 들릴 수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음악이지만,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결국 우리가 듣는 것은 음악 그 자체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붙여온 이름과 설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땐 어쩌면 아이들의 방식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하나로 정리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두는 것이다. 우리는 그 방식을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 그 대신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정리하는 쪽을 택해왔다. 그게 더 정확하고, 설명하기 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쳐버린 감각들도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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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은 어른들에게 묻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하나를 고르는 데 익숙해졌을까. 오늘만큼은 다르게 들어봐도 좋겠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그대로 두고, 그 흐름에 잠시 맡겨보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설명들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 오늘만큼은, 다 잊어버려도 좋다. 어린이처럼 자유분방한 감각을 그대로 믿어도 좋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