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전경.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는 1890년 현 자리에 있던 한옥 건물(장림성당)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0년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한 뒤 1922년에야 성당 건축을 시작해 4년 후 축성식을 가졌다. 외부는 네오-로마네스크풍이지만 내부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한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서울주교좌성당 박성순 야고보 주임사제.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2일 축성(祝聖·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에게 봉헌해 거룩하게 하는 일) 100주년을 맞았다.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Arthur S. Dixon·1856~1931)이 설계한 네오로마네스크 풍의 이 건물은 1926년 5월 2일 부분 완공 상태로 축성식을 가졌으며, 이후 70년 만인 1996년 증축됐다.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는 1890년 현 자리에 있던 한옥 건물(장림성당)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0년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한 뒤 1922년에야 성당 건축을 시작해 4년 뒤 축성식을 가졌다. 외부는 네오로마네스크풍이지만 내부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했다. 서울주교좌성당 제공
대한성공회 김장환 주교가 3일 서울 중구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감사성찬례를 집전하고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는 1890년 현 자리에 있던 한옥 건물(장림성당)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0년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한 뒤 1922년에야 성당 건축을 시작해 4년 후 축성식을 가졌다. 외부는 네오-로마네스크풍이지만 내부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한 것이다. 뉴시스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예배당.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는 1890년 현 자리에 있던 한옥 건물(장림성당)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0년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한 뒤 1922년에야 성당 건축을 시작해 4년 후 축성식을 가졌다. 외부는 네오-로마네스크풍이지만 내부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한 것이다. 서울주교좌성당 제공
박 신부는 “설계도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에 증축 총감독을 맡은 김원 건축가가 딕슨의 부음 기사에서 그가 유품을 영국의 한 시골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내용을 찾아냈다”라며 “그 안에 설계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주교좌성당의 가치는 건축미에만 있지 않다. 대통령 직선제·언론자유 보장 등이 포함된 6·29 선언을 이끈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10일 전두환 정권이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를 대선후보로 선출하자, 이날 오후 성당에 모인 민주인사들은 성당에 쳐들어온 경찰의 방해를 뚫고 성당 종루에 올라 42번의 종을 쳤다. 이 종소리를 들은 시민들은 박수와 경적, 손수건 흔들기로 독재 타도에 호응했다. 전국으로 퍼진 이 물결은 결국 6·29 선언이란 열매를 맺었다.
박 신부는 “서울주교좌성당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민주화 운동, IMF 외환위기 등 100년 동안 많은 질곡 속에서도 늘 국민과 함께 해왔던 곳”이라며 “건축미를 넘어 모든 이의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전경.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는 1890년 현 자리에 있던 한옥 건물(장림성당)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0년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한 뒤 1922년에야 성당 건축을 시작해 4년 후 축성식을 가졌다. 외부는 네오-로마네스크풍이지만 내부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한 것이다. 서울주교좌성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