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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대신 ‘빅테크 DNA’… AI시대, 교육의 판을 바꾸는 ‘미래형 혁신 교육’

입력 | 2026-04-24 16:59:19



AI(인공지능)가 의사 대신 진료/진단하고, 변호사 대신 법률을 검토하거나, 개발자 대신 프로그램 코드를 짜는 시대가 됐다.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산업 지형도 빠르게 재편된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 공교육 정책이나 시스템, 교과 과정 등은 이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속도와 국내 공교육이 대응하는 속도 간의 간극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미래형 교육기관들도 전 세계에서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고정된 캠퍼스 대신 세계 도시를 교실로 삼고, 전공 암기 대신 실전 문제 해결을 중심에 두며, 성적표보다 포트폴리오로 학생을 평가하는 미래형 혁신 대학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직접 만들었는가’를 먼저 묻는다.

하버드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미네르바 대학?

미네르바 대학(Minerva University)은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혁신적 고등교육 실험기관이다. 미국 대학 입학 난이도 평가 플랫폼 니치(Niche)에서 미국 내 입학 가장 어려운 대학 1위, 세계혁신대학랭킹(WURI)에서 4년 연속 혁신 대학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전통 명문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출처=미네르바대학 홈페이지



고정된 캠퍼스가 없다는 점이 미네르바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학생들은 4년간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서울,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하이데라바드, 런던, 타이베이 등 전 세계 7개 도시를 이동하며 공부한다. 각 도시 그 자체가 캠퍼스고 강의실인 셈이다. 이론을 배우고 해당 도시의 실제 사회 문제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강의실 수업 대신 ‘액티브 러닝 포럼(ALF)’이라는 온라인 토론 플랫폼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실시간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사고를 검증한다.

입학 심사 역시 다른 명문대와 다르다. 미네르바는 SAT나 ACT 같은 표준 시험 점수나 추천서를 필수 제출 자료로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원자의 비판적 사고력, 실제 문제 해결 경험, 그리고 ‘무엇을 만들었는지(무엇을 이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때문에 합격률은 하버드, MIT보다 낮은 한 자릿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곳곳의 미래형 교육 실험들

미네르바 외에 교육의 판을 바꾸려는 시도는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 알토 대학교(Aalto University)는 디자인/경제/엔지니어링 세 학문 영역을 하나로 통합해 학제 간 융합 교육을 실현하는 기관이다. ‘슬러시(Slush)’라는 스타트업 컨퍼런스 행사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기업가정신과 학문적 깊이를 함께 추구하는 모델로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핀란드 알토 대학교 전경 / 출처=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에꼴42(École 42)는 교수도 교재도 없는 소프트웨어 교육 기관이다. 동료 간 평가와 프로젝트 기반 학습만으로 개발자를 양성하며, 현재 파리를 포함해 전 세계 50개 이상의 캠퍼스가 운영되고 있다. 학비는 무료이며, 입학 자격은 학력, 나이 무관하고 4주간의 집중 선발 과정인 ‘피신(La Piscine)’을 통해 결정된다.

싱가포르의 싱가포르 경영대학(SMU)이나 중동 아부다비에 설립된 뉴욕대학교 아부다비(NYU Abu Dhabi) 역시, 도시 국가 또는 특수한 지역 맥락 속에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독특한 모델을 구축한다.

이들 기관의 공통점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난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국경을 넘는 협업 경험을 교육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대학 이전 고등교육 단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나타난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제도는 학생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탐색하는 1년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미국의 하이테크하이(High Tech High)도 프로젝트 중심 학습을 K-12 전 과정에 걸쳐 실천하며, 북유럽 여러 나라는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을 국가 교육과정에 통합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닌 ‘무엇을 만들어냈는가’

이들 교육기관이 공유하는 철학은 하나로 요약된다. 더 이상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가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사용해 실제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AI가 방대한 지식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 교육의 핵심은 사고하는 능력과 실행하는 경험에 있다는 인식이 이 흐름의 토대가 된다.

미네르바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지원 학생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지, 어떻게 접근했는지,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심사하는 방식은 기존의 스펙 중심 평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특정 학습 환경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에 옮겨 본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지난 해 3월 개교한 넥스트챌린지스쿨(NCS)은 서울시교육청 등록 대안 교육기관으로, 공교육 교과서 중심의 일방적 지식 전달 대신, 실제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로 해결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중심에 둔다. 앞서 해외의 미래형 교육기관처럼, 기업가 정신, AI 및 딥테크 활용 역량, 글로벌 협업 경험을 교육의 축으로 삼는다.

개교 1년 만에 NCS 첫 졸업생이 최근 미네르바 대학에 최종 합격했다. NCS 재학생인 김재성 군이다. 어릴 때부터 로봇 및 AI 분야 국내외 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NCS 재학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학습 웨어러블 장갑을 개발해 월드 로봇 올림피아드(WRO) 논문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인재다. 한국/미국/인도네시아 등 6개국 청소년이 참여하는 국제 협업 플랫폼 ‘하이퍼스페이스(Hyperspace)’를 직접 구축해 운영한 경험도 있다.

넥스트챌린지스쿨 재학생 김재성 군이 수업 중 발표를 하고 있다 / 출처=넥스트챌린지스쿨



김 군은 NCS에 입학해 수동적 지식 전달 교육이 아닌, 문제 해결 기반의 프로젝트 수행 중심의 학습을 받았다. 항공우주, 바이오, AI, 핀테크 등 딥테크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또한 미국 실리콘밸리, 싱가포르, 베트남, 두바이 등을 탐방하는 ‘글로벌 현장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인사이트도 터득했다. 스탠포드대학, 카네기멜론대학, 미네르바 대학,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 석학과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 현직자, 스타트업 CEO 등이 NCS 강사로 활동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대학 합격’이지만, 그의 성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입시 위주의 성과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대학이 입학 심사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지원자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에 옮긴 경험이다. 김재성 군은 단지 일반 성적표가 아닌 직접 쌓아온 프로젝트 이력과 사고의 궤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의 목표는 AI와 딥테크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가로 시작해, 세상에 큰 혁신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들 미네르바, 알토, 에꼴42, NCS 등의 미래형 교육기관은 근미래 인류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재정의한다. 입시, 시험, 성적을 위해 경쟁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전 세계 무대에서 실행하는 경험을 쌓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AI 시대에 교육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 세계 수준의 응답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IT동아 이문규 기자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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