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
소박한 객실 야외 테라스에는 흰색 욕조가 놓여 있었다. 열대의 숲 향기와 바람, 새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이곳은 콜롬비아의 대표 커피 생산지인 킨디오 주(州) 살렌토. 전망대라는 뜻의 스페인어 ‘미라도르(Mirador)’가 이름에 들어있듯, 마을의 가장 높은 절벽에 자리 잡은 숙소였다.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안개가 내려앉은 코코라 밸리의 왁스 야자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푸다닥’. 커다란 검은 새 한 마리가 갑자기 욕조로 날아들어 화들짝 놀랐다.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오전 8시 반, 호텔 앞에는 빨간색 ‘윌리스 지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투박한 미군용 차량은 이제 콜롬비아 커피 농가의 발이다. 화물 트럭처럼 뒤가 트인 이 차는 커피 자루와 바나나를 싣기도 하고 사람도 태운다. 15명이 빽빽이 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앉는 것보다 서는 게 훨씬 재밌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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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윌리스라는 이름의 이 ‘작은 노새’는 안데스의 거친 길을 잘도 달렸다. 산길을 가르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나무 잎사귀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바비 맥퍼린의 노래 ‘돈 워리, 비 해피(걱정 말아요, 행복하자구요)’가 절로 떠올랐다.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나무인 왁스 야자가 장관을 이루는 코코라 밸리. 콜롬비아 최고액권인 10만 페소 지폐 뒷면에도 이 나무 그림이 있다.
코코라 밸리는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의 핵심 구역이다. 유네스코는 킨디오 등 안데스 중서부 지역의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을 201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여행자들은 코코라 밸리에서 안데스의 신비로운 자연을 감상한 뒤 인근 농장에서 커피가 재배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커피밭, 소규모 농가의 손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오랜 지혜가 얽혀 오늘의 경관을 이룬다.
현지 가이드인 구스타보 씨는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려 애썼다. 함께 걷다가 신비로운 식물이 보이면 멈춰 서 말했다. “이것 보세요.” 그는 왁스 야자가 콜롬비아의 국목(國木)일 뿐 아니라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왁스 야자는 양초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베어지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왁스 야자가 사라지면 노란귀앵무새도 살아갈 수 없어요. 공생하는 존재들이니까요. 인간의 탐욕을 멈추고 자연의 요청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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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그림처럼 형형색색 건물이 늘어선 필란디아.
콜롬비아에서 건축 자재로 자주 활용되는 대나무를 가이드가 숲에서 설명하고 있다.
정원이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광장의 나무 그늘, 공원의 벤치와 집들의 꽃들이 이어지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생활 정원처럼 느껴졌다. 정원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식당에서는 안데스의 맑은 계곡물에서 자란 송어 구이와 파타콘을 먹었다. 파타콘은 바나나처럼 생겼지만 감자 맛이 나는 열대 구황작물 플란타노를 납작하게 튀겨낸 요리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이 땅을 일궈온 사람들의 미소가 특히 아름다웠다.
● 생태계를 담은 커피와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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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테르보 지역의 커피 농장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커피 열매 껍질을 벗기고 있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곱게 감싼 플란타노 볶음밥을 먹은 뒤, 갓 볶아 내린 콜롬비아 아라비카 커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기분 좋은 산미와 풍부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세계적인 콜롬비아 커피를 콜롬비아 현지에서 맛보는 행복이었다.
모양도 이름도 처음 보고 듣는 콜롬비아의 과일 시식 체험 현장.
● 새 소리, 심장 뛰는 소리
다음 날 오전 4시 50분 숙소를 나섰다.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 싶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둠과 안개를 뚫고 출발해 동틀 무렵 도착한 ‘로스 프라이레스’ 폭포 일대는 살아있는 콜롬비아 생태 박물관이었다.
폭포로 가는 숲길의 안내자는 ‘야루모 블랑코’라는 지역 공동체 연합 소속이었다. 전문가들이 생태 관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운이 좋으면 이 일대에서 서식하는 붉은울음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원숭이는 보지 못했지만 걷는 내내 ‘탕가라 멀티컬러’와 ‘갈리토 데 로카’ 등 열대의 희귀한 새들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무엇보다 새 소리를 듣기 위한 고요한 기다림이 좋았다.
콜롬비아 고산지대 원시림 속에서 안데스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로스 프라이레스 폭포.
글·사진 필란디아·살렌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