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향하던 러시아 원유 수송선이 항로를 바꿔 인도로 향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동 공급 차질과 미국의 제재 완화가 맞물리며, 글로벌 원유 흐름이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 ‘아쿠아 타이탄(Aqua Titan)’은 당초 중국 르자오를 목적지로 설정했지만, 동남아 해역에서 항로를 변경해 인도 뉴망갈로르로 향하고 있다. 이 선박은 지난 1월 말 발트해에서 원유를 선적했으며, 21일 인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다. 에너지 분석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최소 7척의 유조선이 운항 도중 목적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변경했다. 인도 주요 정유사들도 일제히 러시아산 원유 확보에 나서면서 시장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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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코르파칸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의 모습. 호르무즈=AP 뉴시스
국제 유가 급등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러시아는 하루 최대 1억5000만 달러(약 2200억 원)의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달에만 최대 49억 달러(약 7조 원)의 재정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우랄(Urals) 원유 가격도 배럴당 70~80달러 선까지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정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유가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일시적 제재 완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해상에 묶여 있던 물량이 시장에 풀렸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유가 안정을 위한 현실적 타협이자, 제재 정책과 에너지 안보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흐름을 두고 중국이 수요에서 밀려났다기보다, 인도가 제재 완화 조치를 활용해 보다 공격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섰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인도 정유사들이 높은 입찰 가격과 대규모 계약을 통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의 ‘큰 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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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이번 흐름이 단기적인 수급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전쟁과 제재가 맞물린 글로벌 에너지 질서 재편의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