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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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 한국 선발 투수로 김광현(38·SSG)이 등판하자 일본 측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언제 적 김광현이 35세가 돼서도 여전히 한국의 에이스를 맡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김광현은 초반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3회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결국 조기 강판됐다. 한국은 그 경기서 4-13으로 완패했고, 조별리그에서도 탈락했다.
2026년 WBC 한국 야구 대표팀 명단에는 당시 김광현보다 나이가 많은 두 베테랑 투수가 합류했다. 39세 류현진(한화)과 42세 노경은(SSG)이다.
이 둘이 없었으면 한국 야구의 17년 만의 8강 진출도 무산될 뻔했다. 류현진은 조별리그 대만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실투 하나가 홈런으로 연결돼 3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만 선발 투수 역할은 해냈다. 승부치기 끝에 4-5로 패하긴 했지만 류현진이 초반을 제대로 막아주지 않았다면 한국은 더 일찍 무너졌을 것이다. 류현진은 대회 기간 내내 한국 투수진의 구심점이 됐다.
나이 무색한 베테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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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과 노경은은 ‘핵 타선’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투수와 2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비록 콜드게임으로 졌지만 코칭스태프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두 선수의 구위는 누가 봐도 전성기 시절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시속 150km는 기본이고 160km를 던지는 투수가 넘쳐나는 ‘구속 혁명’의 시대에 두 투수는 140km 초중반의 속구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선수들의 느린 구속을 지적했지만 류현진은 귀국 인터뷰에서 “당연히 구속이 빠르고 제구도 잘되면 좋지만, 본인이 어떤 걸 잘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류현진 본인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그렇게 살아남았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선 왼손 강속구 투수로 꼽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평균 구속이 느린 축에 속했다. 류현진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정교한 투구에 집중했다. 그는 모든 변화구를 마음먹은 곳에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수였다. 2019년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2.32)에 오른 것도 적응의 산물이었다.
뭘 생각해? 그냥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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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에 철저한 노경은의 모든 건 야구에 맞춰져 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루틴을 지킨다. 16일 새벽 비행기로 귀국한 노경은은 그날 곧바로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루틴상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경기에 나서는 마음가짐도 단순 명료하다. “내 임무는 시키면 그냥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WBC를 끝으로 두 선수는 국제대회에서 은퇴한다. 20년 넘게 본보기이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온 두 선수의 길을 따르는 건 남은 선수들의 몫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