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란서 금고’ 리뷰
‘불란서 금고’에서 신구 연습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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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금고를 열면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
진보라색 수트를 차려입은 밀수꾼이 굳게 닫힌 금고 앞에서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손에 넣고 싶은 건 ‘해궁신유도.’ 조선의 대표 화가 안견이 그렸다는, 풍문으로만 전해지는 15세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내게 북벽이에요.”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불란서 금고’는 ‘밤 12시, 모든 전기가 나가면 금고를 열 수 있다’는 설정 아래 다섯 사람이 금고를 털기 위해 은행 지하 밀실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맹인 기술자, 교수, 건달, 밀수, 은행원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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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관심은 금고털이 기술자 ‘맹인’ 역을 맡은 90세 신구에게 쏠렸다. 동선도 크지 않고 대사량도 많지 않았지만, 이 베테랑 배우는 존재감으로 무대를 채웠다. 건달이 도발하듯 다가올 때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맞섰고,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 내레이션에서는 북벽 정상에 올랐다 하산하는 자의 달관한 듯한 느낌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출연 배우 상당수가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그의 아홉자 대사, “북벽 장춘이라고 했다”를 꼽은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연기 맛집’이라는 후기대로, 개막 공연 무대에 오른 장현성(교수), 최영준(건달), 정영주(밀수), 김슬기(은행원)는 각각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티키타카의 향연은 극의 큰 웃음 포인트다.
왼쪽부터 최영준(건달), 장현성(교수), 김슬기(은행원), 정영주(밀수). 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특히 김슬기의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연기는 일품이다. 건달이 “친절한 것 같은데 말투에 서늘함이 있어”라고 말한 그대로다. “어르신, 은행 문턱 높지 않아요”라고 말할 땐 폭소를 자아내지만, 가방에서 금고를 여는 결정적 ‘열쇠’를 꺼내 드는 순간에는 오싹함과 당혹감을 안긴다. 장진은 김슬기를 두고 “내가 불안한 순간에 늘 뒤를 받쳐주는 보험” 같은 배우라고 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드러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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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관람 후기에는 “블랙 코미디 연극의 정수”, “몰입도가 높아 금고털이의 멤버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등 호평이 적지 않다. 다만 “금고에 접근하기까지 전개가 길어 다소 지루하다”는 아쉬움도 보인다.
‘불란서 금고’는 오는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놀(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공연된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