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폭발사고 70%가 이륜차
전기차와 달리 가정내 충전 많아… 폭발사고 잇달아 인명피해 속출
전기차 ‘셀-원료’ 원산지 의무 공개… 이륜차는 공개 의무 없어 ‘사각 지대’
서울 은평구에서 서대문구로 출퇴근하는 이모 씨(37)는 최근 주말 중 하루는 외출을 미루고 ‘전기자전거 배터리 충전하는 날’로 정하고 집에 머무른다. 치솟는 자가용 기름값을 아끼려 전기자전거를 구매했지만 최근 잇따르는 배터리 폭발 사고 소식에 충전 중 자리를 비우기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9일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만에 하나 배터리가 폭발하더라도 집 밖에 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빨리 수습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당분간은 이렇게라도 충전 상황을 지켜보며 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배터리 화재 70%는 전기이륜차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휘발유 등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전기자전거와 킥보드 등 소형 전기이륜차가 회사원과 학생의 실속형 이동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충전 중 화재 사고가 잇따르며 이용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7일 오후 3시경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전기자전거에서 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이 1층까지 번져 주민 17명이 대피해야 했다. 소방 당국은 배터리가 과열돼 발생한 화재로 보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전기이륜차는 전기차와 같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국내 전기이륜차 보급 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7만 대로 추산돼 전기차(약 82만 대)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배터리 화재의 절대다수가 전기차가 아닌 전기이륜차에서 발생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901건 중 킥보드(485건)와 자전거(111건), 오토바이(31건) 등 전기이륜차에서 비롯된 사고가 627건으로 69.5%를 차지했다.
특히 외부 공용 충전소에서 주로 충전하는 전기차와 달리 전기이륜차는 가정 내 콘센트로 충전하는 경우가 많아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의 위험이 크다.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창전동 아파트에선 전기오토바이 배터리가 폭발해 집에 있던 모자 2명이 숨지고 주민 16명이 다쳤다. 올해 1월 28일엔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전기자전거 배터리에 불이 나 주민 1명이 다쳤다. 전기이륜차는 기기가 작아 배터리가 외부에 노출된 경우가 많고, 배터리가 충격에 노출됐을 때 손상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제조사 정보 공개 사각
하지만 전기차와 달리 전기이륜차는 배터리 정보에 대한 세부적인 공개 규정이 없어 원산지를 속이는 등 ‘꼼수’에 취약하다. 창전동 화재의 경우 오토바이 제조업체가 ‘배터리는 삼성SDI 제품’이라고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산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자동차와 달리 이륜차 배터리는 영세 업체가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경우가 많아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전기이륜차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4년 8월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1대가 폭발해 주변에 주차된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하자 같은 해 9월 전기차 배터리의 제조사와 셀 형태, 주요 원료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기차와 같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이륜차는 이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전기자전거 등은 자동차관리법상 관리 영역이 아니라서 적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이륜차 배터리에 대한 안전대책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이륜차도 정보 공개 대상에 포함하고, 일정 거리 이상 주행 시 제조사나 유통사에 배터리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이다겸 기자 gyeom@donga.com
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