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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중략)
말하지 않는 것들을 보살피며
무성한 기쁨을 키워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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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로 파스타를 말아서
접시에 조심스럽게 옮겨놓는다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서
파스타 위에 얹는다
신문지를 펼쳐놓고 깨진 화분을 하나하나 옮긴다
의자에 앉아 선물 받은 베고니아가 시들어 있는 것을 본다
잎 가장자리가 누렇게 말려 들어가 있는 것을 본다
방충망을 떼어내어
샤워기 호스를 붙잡고
벌레의 사체를 배수구로 흘려보낸다
다음, 그 다음에도
―여세실(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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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거우면 생활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어수선하면 집이 엉망이 된다. 벌써 몇 달째 책으로 뒤덮인 책상을 좀 치워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 다음에! 마음은 쉽게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시의 첫 줄에 뜨끔하다. ‘다음’이란 차례의 바로 뒤일 수도, 어떤 기회일 수도 있다. 화자는 ‘기회’를 얻는 건 요원하다고 생각하는지, 소소한 일들을 찾아내 순차적으로 하고 있다. 깨진 화분을 정리하고 때 묻은 방충망을 떼어내 물로 씻어낸다. 파스타를 만들고 접시를 골라 음식을 정성껏 담아 먹는다. 시든 식물을 살피고 벌레 사체는 배수구로 흘려보낸다. “말하지 않는 것들을 보살피며/무성한 기쁨을 키워낼 것”, 시는 여기에 삶의 비밀이 있음을 알려준다.
시를 읽으니 집 안 곳곳의 먼지를 털어내고 아무렇게나 쌓아둔 책들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정리해 단정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생활을 돌보고 싶어졌다. “말하지 않는 것들”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삶의 “다음”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 아닐까. 어쩌면 ‘다음’은 ‘지금’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