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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걸프전때 검증된 ‘쿠르드 카드’로 지상전… 이란 흔들기

입력 | 2026-03-06 04:30:00

[美-이란 전쟁]
총성 울린 트럼프의 ‘대리 지상전’
쿠르드軍, IS격퇴 등 전투경험 풍부… 2일부터 이란내 전투진지 구축나서
“美-이스라엘, ‘자치권’ 당근책 제시”
공격 격화땐 소수민족 봉기 가능성… 이란 “이라크 쿠르드본부 공습” 반격




올 1월 18일 이라크 북부 에르빌 일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원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4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등은 수천 명의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이라크에서 이란으로 넘어가 지상 공격을 펼쳤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

“미국이 쿠르드족을 통해 사실상 이란과의 ‘대리 지상전’을 시작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언론들이 이라크에서 수천 명의 쿠르드족 전투원이 이란으로 넘어가 전투를 시작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중동 전문가인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5일 이같이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쿠르드족에 대한 무기 지원 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을 활용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2010년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창궐할 때도 쿠르드족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미국이 쿠르드족에 대한 무기 지원을 통해 이란 혁명수비대 등과의 전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쿠르드족 민병대들이 전투에 나설 경우 아제르바이잔계, 루르계, 아랍계, 튀르크계 등 이란 인구의 약 40%인 소수민족들도 자극을 받아 민중 봉기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현 이란 정권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 쿠르드족, 사실상 지상전 투입

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i24뉴스는 이라크에서 수천 명의 쿠르드족 전투원이 이란으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또 이란 내 쿠르드계 정당 및 무장단체의 연합체 성격인 이란쿠르드정치세력연합(CPFIK) 관계자를 인용해 “쿠르드 자유생명당(PJAK)에 소속된 전투원들이 이미 2일부터 이란 내부에서 전투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수천 명의 PJAK 전투원 또한 이란 북부 자그로스 산맥 깊숙한 곳에 배치됐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미국 CNN 또한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란 내에서 민중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쿠르드족 군대에 대한 무장 지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이라크에서 이란으로 넘어간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원래 이라크 출신인지 혹은 이란 출신으로 이라크의 쿠르드족으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은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예루살렘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이들이 혁명수비대 등과 교전을 벌이고, 나아가 이란 정부의 국민들에 대한 통제와 치안 체제를 흔드는 역할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이란 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민중 봉기 분위기도 더욱 강하게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 발발 후 줄곧 ‘이란 시위대를 보호하겠다’고 천명해 왔다”며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이번 공습 뒤 민중 봉기에 나서는 이란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쿠르드족 지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북부의 미군 기지와 관련해 해당 지역의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통화했다”면서도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무장시키겠다는) 계획에 동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란 또한 이런 쿠르드족을 공격하고 있다. 4일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이라크 내 쿠르드족 관련 단체의 본부를 미사일 3발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 美-이스라엘, 자치권 대가로 쿠르드족 부추겨

미국 정치매체 액시오스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은 쿠르드족에게 현 이란 정권이 붕괴될 경우 쿠르드족에게 향후 쿠르드족 자치 지역 건설 등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약속했다. 자치권을 일종의 ‘당근’으로 활용한 셈이다.

쿠르드족을 이란 지상전에 이용하려는 계획은 이란에 적대적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가 먼저 구상했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또 CIA도 이 구상에 동의했다고 했다.

쿠르드족 전투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는 뜻을 가진 쿠르드어 ‘페슈메르가(Peshmerga)’로 불린다. 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군사조직 이름 또한 페슈메르가다. 실제 쿠르드족은 IS, 각국 정부군과의 크고 작은 교전을 통해 상당한 지상전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라크에서 펼쳐진 IS 퇴치 전쟁 때는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다만 쿠르드족은 과거 전쟁에서 미국에 적극 협력했지만 당시 보상으로 거론되던 독립국가 설립이나 자치권 확대 등을 얻지 못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시리아의 쿠르드족 무장단체인 시리아민주군(SDF)은 IS 격퇴에 앞장섰다. 다만 당시 미국은 2019년 10월 시리아 내 미군 철수를 발표하는 등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았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강대국들이 여러 차례 쿠르드족을 이용하고 ‘토사구팽’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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