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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37년 철권통치하며 反美 앞장… 핵개발도 이끌어

입력 | 2026-03-02 01:40:00

[트럼프, 이란 하메네이 제거]
공습에 사망, 하메네이는 누구
호메이니 승계한 이슬람 혁명 주역… 정치-종교 장악, 절대권력 휘둘러
경제난 이어지자 ‘반정부 시위’ 확산… 무차별 유혈 진압에 민심 등돌려




2023년 11월 19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운데)가 군 지휘관들과 함께 혁명수비대의 항공우주 성과를 알리는 전시회에 참석한 모습.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는 생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앞세우며 강도 높은 반미, 반이스라엘 전략을 구사했다. AP 뉴시스

“이란 개혁파와 강경파를 기민하게 이간질하며 권세를 휘두른 인물.”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숨진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두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린 논평이다. 그는 1989년 6월 집권 후 37년간 신정일치 국가 이란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모두 장악한 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하메네이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등 친(親)이란 성향의 이른바 ‘저항의 축’을 지원하며 반미·반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했다. 또 이란의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해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생을 도외시하고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해 오래전부터 국내외에서 큰 비판을 받아 왔다.

그의 사망 또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경제난에 반발해 올 1월 중순까지 이어진 반(反)정부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이란 정부는 향후 40일간을 그의 추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 호메이니 측근… 북한과도 우호적 관계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마슈하드의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쿰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주도해 현 신정체제를 수립한 초대 국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의 제자가 됐다. 또 호메이니가 주도한 반왕정 운동의 선봉에 서며 팔레비 왕조의 전제 통치에 대항했다.

호메이니가 1964년부터 해외 망명 생활을 할 때 하메네이는 이란에 남아 무장 성직자 조직을 관리하며 투옥, 고문, 유배 생활을 견뎠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성공 뒤 호메이니가 귀국하며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통령으로 활동하던 시기(1981∼1989년)에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이끌었고, 1989년 6월 호메이니 사망 뒤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하메네이는 최고 지도자 등극 한 달 전인 1989년 5월에는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2013년 이란을 찾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면담하는 등 북한과 밀착했다. 그는 1981년 암살 위기도 겪었다. 그가 수도 테헤란의 한 모스크에서 설교하던 중 라디오 안에 설치된 폭탄이 터졌다. 이 여파로 오른팔을 크게 다쳐 영구적으로 쓰지 못하게 됐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넷, 딸 둘이 있다. 딸 중 한 명은 이번 공습으로 숨졌다. 한때 그의 차남 모즈타바(57)가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군으로도 거론됐지만 권력 세습에 대한 안팎의 비판으로 세습이 이뤄지진 못했다. 하메네이 일가는 1979년 혁명 당시 몰수한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비밀 조직 ‘세타드’를 관장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산은 지난해 말 반정부 시위 발발 후 이미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경제난-장기 집권 여파로 어려움 겪어

하메네이는 신정체제 수호를 위해 창설된 최고 지도자 직속 군사 조직 ‘이란 혁명수비대’를 통해 반대파 숙청과 강경 대외정책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국경 방어가 목적인 정규군과 별도의 조직인 혁명수비대는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또 혁명수비대를 통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했다. 최종적인 핵 개발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탄도미사일의 경우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해 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일부 남유럽과 서유럽까지 사정권에 둘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제 발전을 도외시하고 고물가, 고실업, 화폐 가치 하락 등이 이어지자 2000년대 들어 반정부 시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민심 이반이 가속화했고 그의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 또한 커졌다. 특히 2022년 9월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 지난해 말 경제난에 항거하는 반정부 시위 등으로 하메네이 정권의 붕괴가 시간문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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