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유지 전력 없어도 1만 년 간 데이터 보존유리 저장 美 연구팀, 레이저 저장 장치 구현… 유리 내부 결정 구조 변형해 기록 1000조분의 1초로 레이저 방출… 유리조각에 정보 4.84TB 저장 대량 생산 및 안정성 개선은 숙제
레이저로 정보를 각인한 유리 저장장치. 마이크로소프트의 비행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들어간 지도 데이터가 저장됐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제공
광고 로드중
사람 손가락 하나보다 조금 넓은 유리판에 4.84TB(테라바이트·정보량의 단위로 1TB는 1024GB)의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책 200만 권 또는 4K 화질 영화 5000편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레이저로 유리에 3차원 형태의 데이터 단위인 ‘복셀(voxel)’을 각인하는 방식으로, 정보 기록 속도는 초당 최대 8.2MB(메가바이트) 수준이다.
유리에 새긴 정보는 이론상 290도 고온에서도 최대 1만 년 보존될 수 있다. 실온에서는 별도의 유지 전력 없이 수천 년 간 정보를 저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읽고 쓰는 속도가 빠르지만 유지하는 데 전력이 필요한 전자기 방식 저장장치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기 보관용 정보 저장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프로젝트 실리카(Project Silica)’ 연구팀은 유리판에 레이저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를 구현하고 연구결과를 18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광고 로드중
기술의 발달로 매일 쏟아지는 정보량이 급증하면서 기존 저장장치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흔히 쓰이는 전자기식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는 길어야 수십 년 동안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저장된 정보의 정확도를 유지하는 정기 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전력을 계속 소모해야 한다.
언제든 접근해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핫 데이터’와 달리 ‘콜드 데이터’는 접근 빈도는 낮지만 향후 참조하기 위해 보존해야 하는 정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천체망원경 등에서 매일 생산되는 대량의 정보는 즉시 열어 볼 필요는 없지만 추후 분석을 위해 일단 저장해 둘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이 콜드 데이터 보관을 위한 저비용·장수명 저장장치를 찾는 이유다. 생명체의 천연 저장장치인 디옥시리보핵산(DNA)도 저비용·장수명 저장장치 후보다.
연구팀은 유리 내부 결정 구조를 광학적으로 변형시켜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매우 좁은 영역에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펨토초(fs·1000조분의 1초) 레이저가 핵심 기술이다. 펨토초 수준으로 짧은 시간 안에 불연속적인 빛 신호인 펄스를 방출할 수 있는 장비다.
정보 기록 단위인 복셀은 입체 형태로 하나가 1비트(bit) 이상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비트는 있다(1)와 없다(0)로 이뤄지는 디지털 정보의 최소 단위다. 연구팀은 넓이 12cm2, 두께 2mm의 유리조각에 정보 4.84TB를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총 301개의 복셀 층으로 이뤄졌고 정보 기록 밀도는 부피 1mm3당 약 200MB다.
광고 로드중
소재는 일반적으로 창문에 쓰이는 유리보다 튼튼한 보로실리케이트 유리 또는 퓨즈드 실리카 유리가 사용됐다. 연구팀은 “호박이 고대 생물 화석을 보호하듯 유리가 전자기 간섭, 습기, 물리적 손상으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 성능 개선 및 충격·부식 방어 필요
유리 저장장치가 현대 데이터센터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려면 정보 저장 밀도와 기록 속도 등 아직 성능을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안정적인 대량 생산 방법 개발과 더불어 안정성 측면에서는 기계적 충격이나 화학적 부식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
중국 산둥대 물리학과의 펑천 교수와 보우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 관한 논평에서 “유리 저장장치가 대규모로 구현된다면 고대 갑골문, 중세 양피지, 현대 HDD에 필적하는 지식 저장 역사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언젠가 유리 한 조각이 수천 년에 걸쳐 인류 문화와 지식의 횃불을 이어갈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