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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막잔[이준식의 한시 한 수]〈356〉

입력 | 2026-02-19 23:09:00


수염이 눈처럼 하얘지도록 다섯 임금을 모신 신하, 또 새해를 맞으니 칠순이라네.

늙은 덕분에 새해 술의 막잔은 내 차지, 병을 추슬러 아직 온전한 이 육신.

세월에 닳고 삭이며 높은 지위까지 얻었으니, 동시대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지.

대력(大曆) 시기 죽마고우 중에, 지금 몇이나 이 회창(會昌) 시대의 봄을 볼 수 있으려나.

(白鬚如雪五朝臣, 又値新正第七旬. 老過占他藍尾酒, 病餘收得到頭身.

銷磨歲月成高位, 比類時流是幸人. 大曆年中騎竹馬, 幾人得見會昌春.)

―‘즐거이 새해를 맞으며 읊조리다(희입신년자영·喜入新年自詠)’ 백거이(白居易·772∼846)



고희(古稀)의 새해 아침, 감회가 새롭다. 시인은 다섯 임금을 거치며 관료 세계의 격랑을 견뎌 왔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말보다, 그 바람을 맞고도 아직 서 있다는 말이 먼저다. 관습에 따라 새해 아침 연회에서 최연장자에게 돌아오는 막잔은 축원인 동시에 생존 확인이다. 장수(長壽)의 덕담과 가족의 온기가 잔에 함께 돈다. 병을 앓은 뒤 몸을 추스른 사실이 새삼 다시없는 축복처럼 느껴진다. 오래 버틴 시간, 끝내 지켜 낸 무사(無事). 시인은 그것을 ‘행운’이라 부른다. 자랑보다는 조용한 안도에 가깝다.

새해의 기쁨 너머로 유년의 죽마고우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이 봄을 함께 맞을 얼굴이 드물다는 깨달음이 스친다. 그래서 새해의 덕목은 더 분명해진다. 재물이나 직함보다 몸, 성취보다 무탈, 박수보다 식탁의 온기. 새해의 막잔은, 결국 그 순서를 다시 일깨워 준다. 당 덕종(德宗) 대력에서 무종(武宗) 회창까지는 대략 70년의 간격이 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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