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2월 해외 과학자 유치해 KIST 설립 “과학기술 없이 경제 성장 없다” 파격 지원 종합제철 건설 계획 세워 산업화 토대 놓아 정부는 연구 자율 주고, 연구소는 혁신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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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에 과학기술 관련 조직이 처음 문을 연 때는 1956년이다. 당시 문교부에 원자력과가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발족하면서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연구용 원자로가 설치됐다. 6·25전쟁 직후였다. 하루아침에 일본을 항복시킨 핵폭탄의 위력을 체득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위해 원자력을 가장 필요한 기술이라 믿었던 듯싶다. 영재들을 선발해 국비 지원으로 미국 등에서 공부시켰고, 이들은 우리 원자력 산업의 씨앗이 됐다.
1966년 2월, 즉 지금부터 정확히 60년 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과학기술자들을 해외에서 초빙하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21일에는 정부 안에 과학기술처를 설치했다. 당일 동아일보 1면은 이 소식을 “과학기술 없이 경제성장이나 생활 향상 없다”로 축약된 대통령 치사와 더불어 약 200자의 작은 크기 기사로 전했다. 바로 옆, 그 세 배 크기로 게재된 기사는 체코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여자 농구팀이 일본을 꺾었다는 소식이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당시 우리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1967년 5월 3일에는 대선이 있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재선에 나섰고, 당연히 선거운동에 모든 힘을 쏟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처를 선거 보름 전에 발족시켰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진흥이 절대적이라는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KIST 발족과 더불어 연구원들을 특별 대우하고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육성법도 제정했다. KIST에 유치한 과학자들에 대한 처우는 국립대 교수들 연봉보다 세 배 정도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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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응해 연구원들은 헌신적으로 노력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쌓았다. ‘유치 과학자 1호’로 독일에서 부임한 김재관 박사 등은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계획’을 만들었고, 이는 오늘의 포스코로 실현됐다. 1970년 4월 1일 포스코 기공식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더불어 첫 삽을 뜬 김학렬 부총리는 “지금까지 투자된 KIST 예산은 이 계획서 하나로 다 회수됐다”고 술회했다. 철강이 없었다면 자동차, 조선, 그리고 화학 등 많은 산업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KIST는 발전하면서 기계, 전기, 화학 등 20여 개에 달하는 분야별 정부출연연구소로 분화됐었다. 그 결과 현재 약 3만 명의 인력이 이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기에 한 해 연구비로 약 6조 원이 투입되고 있다. 60년 전 KIST의 연간 예산은 10억 원이었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그리고 연구소들은 후발국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됐다. 베트남 하노이 근교에 자리 잡고 있는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은 KIST와 꼭 닮은 연구기관을 갖고 싶다는 베트남 정부의 뜻을 좇아 두 나라의 협력으로 2017년에 설립됐다.
이제는 앞으로의 60년을 위해 새로운 틀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연구소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많은 연구가 이제 세계를 이끌고 있는 만큼 연구에 대한 모든 업무는 연구자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주 52시간 근무제나 블라인드 채용, 혹은 카르텔 운운하며 연구개발(R&D) 예산을 20%나 일괄 삭감하는 간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IST의 한 해 연구비는 4500억 원을 상회하는데, 그중 적어도 1000억 원 정도는 기획에서 집행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자율성을 줘야 한다.
연구소에도 다음 60년을 위한 과제가 있다. 이는 지난 60년간 각자도생과 각개약진으로 발전해 온 연구소들의 근본적 자기혁신이다. 융합 과학기술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예를 들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부각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은 원자력을 비롯해 기계, 소재, 전기, 표준 등 모든 연구소가 힘을 합쳐야 할 과제다. 안팎의 벽을 허물고 협력에 나서야 밝은 미래가 열린다.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 전체에 기여할 과학기술을 위해 정부의 정책 변화와 연구소 스스로의 혁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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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