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기념터에 총독부도서관… 식민통치 기념차 천황제일에 개관 경성부립도서관도 소공동에 신축… 어린이-부녀열람실, 사회관 갖춰 식민권력을 드러내는 상징물이자… 조선인에게 지식-문화의 장 제공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 과정에서 대규모 공공도서관이 세워졌다. 조선총독부도서관이 발간한 잡지 ‘문헌보국(文獻報國)’ 창간호(1935년) 표지에 실린 도서관 정면.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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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공공도서관의 이중적 성격
전통시대 일반 대중이 아닌 권력자를 위해 당대의 기록과 지식을 모아두는 장소로 출발한 도서관은 근대에 이르러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했다. 1895년 출판한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유길준은 서양의 도서관을 “다양한 책을 보관하고 읽게 하여 세상에 무식한 사람을 없애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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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총독부도서관은 1925년 4월 3일 정식 개관했다. 공사는 더 일찍 끝났지만 전설상 첫 일본 천황인 진무천황제일(神武天皇祭日)에 맞췄다. 마치 진무천황이 조선에 문명의 시혜를 베푸는 듯한 기념성을 부여한 것이다. 총독부도서관은 조선의 대표 도서관으로, 1930년대 중반 통계를 보면 조선 내 모든 도서관 장서량 합계의 3분의 1 정도를 소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도서관의 기본 기능 외에 도서관사업회를 조직해 각종 강연회, 독서회, 영화회 등을 활발하게 개최했다. 또 지방 도서관에 매월 50권씩 대출해주는 순회문고도 운영했다.
매일신보(1931년 9월 8일)에 실린 조선총독부도서관 열람실 풍경.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이런 과정을 거쳐 총독부도서관과 경성부립도서관은 모두 소공동 일대 옛 대한제국의 기념 공간으로 모이게 됐다. 큰 시설이 입지할 만한 규모의 국공유 부지가 있는 데다 환구단을 철거하고 조선호텔을 건립한 것처럼 과거의 기념물을 훼손해도 큰 반발이나 껄끄러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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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신축한 경성부립도서관.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취운정은 여흥 민씨 세력의 중심 인물인 민태호가 19세기 중반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다. 병합 이후 북촌 옛 양반 상류층의 사교 공간으로 이용되다가 1920년 김윤식 윤익선 등이 이곳에 도서관을 개관했다. 조선 말기 고관 출신인 김윤식은 병합 당시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는데, 3·1운동기 일본 정부에 독립청원서를 보냈다가 작위를 박탈당하고 2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취운정 경성도서관의 초대 관장을 맡고 자신의 장서를 기증했다. 3·1운동기 보성학교 교장이었던 윤익선도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했다가 체포된 인물이다.
취운정 경성도서관의 개관에는 3·1운동 이후의 고양된 민족적 분위기, 양반 상류층의 공간이 대중의 공간으로 바뀌는 시대적 변화가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1891∼1968)는 일기에서 “전날 귀족들이 놀음놀이하던” 취운정이 도서관이 되었는데 “발가벗은 버드나무 사이로 다복한 애소나무숲을 보면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 굽은 길에는 그윽하고 고요한 맛이 있어, 벌써 시끄러운 티끌의 괴로움을 잊게 한다. 과연 글 읽기에 마땅한 곳”이라고 썼다(가람일기, 1921년 1월 27일).
그러나 취운정 도서관도 1년여 만에 운영난에 빠져 1922년 이범승에게 인수됐다. 이범승은 교토제국대 출신으로 남만주철도회사에 근무했던 인물이다. 당시 특별한 직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희귀한 ‘제국대 출신 조선인’으로서 총독부 고위 관리들과 교분이 있었다. 그래서 보조금까지 받아 도서관을 인수했다. 이범승은 탑골공원 옆에 석조 2층 건물을 신축하여 경성도서관을 재개관하고 취운정 도서관은 별관으로 운영했다.
‘조선 사람 경영’ 경성도서관을 소개한 매일신보(1923년 7월 27일). 이범승이 탑골공원 옆에 신축했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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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립도서관 어린이열람실은 “제 집 서가의 책처럼 마음대로 꺼내다 보고 재미없으면 갖다 꽂고 딴 책을 가져오기를 아무리 자주 되풀이해도 그만이었다.” “내 동무가 읽은 건 소공녀였고 끝까지 다 읽었다고 했다. 우리는 몹시 흥분해서 서로가 읽은 책 얘기를 주고받았고 다음 공일에도 또 가자고 약속했다.” “소공녀 세라도 하녀로 전락한 후 어느 때부터인가 문득 밤마다 그의 귀가를 기다리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과 훈훈한 난로를 꿈처럼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부립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은 바로 그런 꿈의 세계였다.”
이는 박완서(1931∼2011)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한 대목이다.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총독부도서관과 경성부립도서관의 모습이 생생하다. 비록 일제 침략전쟁이 한창인 암울한 시기였지만 동화를 읽으며 꿈을 키우는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훗날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됐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