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여왕과 은빛 갑옷[임용한의 전쟁사]〈403〉

입력 | 2026-02-09 23:06:00


유럽의 왕비와 공주들이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이 화제다. 54세의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는 육군 예비군에 입대했다. 훈련이 끝나면 중령으로 복무한다. 노르웨이의 잉리 알렉산드라 공주도 최근 15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의 그린란드 갈등으로 유럽에 안보 위기가 대두하고 있다. 군사비 증액과 징병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쟁 위기를 왕실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 판단의 기준은 진정성에 달려 있다. 유럽에는 왕족과 귀족이 국방 일선에 서야 한다는 오랜 전통이 있다.

지금은 스캔들로 왕자 칭호를 박탈당했지만, 영국 앤드루 전 왕자도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6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은빛 플레이트 갑옷을 착용하고 국민 앞에 나서곤 했다. 44년의 통치 기간 중 일선에 나간 적은 없지만, 국민들은 시가에서 갑옷 입고 말을 달리는 여왕의 모습에 환호했다.

그것은 비단 인기 관리용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했을 때 영국 육군은 민병대 수준이었고 국방 예산은 형편없었다. 영국보다 10배는 부유했던 스페인은 힘을 키우고 있었고, 결국 영국 침공을 계획해 무적함대를 출동시킨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군사비 증액과 육군 강화에 힘썼다. 만년에 국가 재정이 어려움에 처하긴 했지만, 이런 노력으로 영국은 유럽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력을 키웠고 무적함대를 수장시키며 네덜란드에서 대기하던 스페인 육군의 침공 기도를 좌절시켰다.

다만 잠자는 국민을 깨우려는 여왕과 공주들의 노력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엘리자베스 1세는 궁전에서 승리를 맛보았지만, 현재 유럽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용한 역사학자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