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다스리기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 못하고, 계속 미루고 피하며 위축된다면 사회적 잣대로 타인과 비교 말고 예민한 기질, 훈련으로 변화 가능 불안감과 사실 나눠서 바라보고 없애려 하기보다 그저 흘려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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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키렌 슈나크
‘은퇴가 코앞인데 아이들은 아직 학생이야. 앞으로 어떻게 살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지 못하면 어쩌지’….키렌 슈나크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불안에 시달린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불안감이 커진다고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영국 임상심리학자 키렌 슈나크는 “불안은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옥스퍼드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슈나크는 정신 질환을 겪는 이들을 20년 넘게 치료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연계해 성인과 아동의 정신 건강을 관리해 왔다. 그는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원제 ‘Ten Times Calmer’·오픈도어북스)에서 공황장애, 질병불안장애 같은 여러 유형의 불안 사례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 불안 억누르면 번아웃 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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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불안으로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걸 넘어서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계속 무언가를 회피하거나 미루고, 마비된 느낌을 받거나 반복적으로 위축된다면 전문가와 상담할 시점일 수 있습니다.”
불안을 회피하는 사람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치료가 필요할까. 그는 이 역시 불안이 일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을 억누르는 사람은 다른 감정들 역시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죠. 불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불안이 계속 커지다가 번아웃 혹은 다른 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불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은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줄면서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승진 압박과 해고 두려움도 크다. 이런 구조에서 개인은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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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 중에는 “이런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기질적으로 불안에 더 취약한 사람이 있는지, 이런 사람도 불안을 줄이는 게 가능한지 물었다.
“예민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특성이 평생 바뀌지 않는 운명은 아닙니다. 기질은 악기에 비유할 수 있어요. 더 높고 큰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진 악기라도 연주자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연주하는 법을 배우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불안의 60∼70%는 환경, 습관, 사고방식,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났든지 간에 뇌에는 근육처럼 변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이 있습니다. 특정한 사고방식과 태도, 자기 관리 방식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뇌의 경로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 부모가 실수 인정하면 아이 회복력 커져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둔 부모 중에서는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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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예측하고 처리할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나갔을 때 좌절, 불안, 불완전함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설명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는 회복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트라우마가 어린 시절 겪은 일이나 부모와 관련된 것은 아니며,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 간 갈등이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 중에는 성인이 돼서도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분노와 원망은 보호받지 못한 ‘과거의 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 보호벽과 같습니다. 이런 감정은 어린 시절에 대한 애도의 일부이자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는 부당함에 대한 항의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학대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환경에 대해서도 변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상담한 많은 성인의 경우 그들의 부모 역시 트라우마, 압박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건 상황을 명확히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모 역시 자신의 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고, 동시에 그들이 가한 상처에 대해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면허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 불확실성 견디기 훈련
“완벽이란 건 결코 온전히 달성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언제나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저는 이런 분들에게 ‘전략적 불완전함’을 연습해 보라고 합니다. 주간 혹은 일간 단위로 부담이 적은 과제를 하나 정해 일부러 ‘충분히 괜찮은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감각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거죠. 특정 과제를 하는데 시간제한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이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는 불안을 느낄 때는 불안한 감정과 객관적인 사실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자세하게 글로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실과 불안한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보면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혼이나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아이를 키우는 데 실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안을 느끼는 분들에게도 이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다 보면 삶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불안을 야기하는 불확실성 자체는 제거할 수 없지만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근육과 같아서 훈련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만약 특정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고 묻는 대신 ‘설령 그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불안을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불안은 ‘레이더’처럼 잠재적 위험을 감지하게 합니다. 위험 상황에서 빠르게 반응하도록 하기에 인간 생존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불안은 수행 능력을 높이고 도전에 대비하게 하죠. 불안이 문제가 되는 건 레이더가 오작동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데도 계속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경우죠.”
불안한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흘려보내라고 강조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는 당부했다.
“불안은 길을 잃은 전령과 같아서 침묵시키려 할수록 더 큰 소리를 냅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불안은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과 같습니다. 하늘은 구름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저 구름이 움직이고 결국 지나가도록 공간을 내어줄 뿐입니다. 구름이 있다고 해서 하늘의 본질이 바뀌지 않듯, 불안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건 아닙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