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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없는 바다의 정치학… “경계 미획정이 우발적 충돌 키운다”

입력 | 2026-02-07 01:40:00

[토요기획] ‘국경 없는 바다’ 한반도 해양 경계의 현실
中 해경 ‘법 집행’에 동중국해 긴장… 주변 확정 경계선은 한일 대륙붕뿐
서해 구조물 논란에 갈등 되살아나… 한중, ‘중간선’ vs ‘관련 사정 고려’
한일, 2011년 이후 경계 획정 동결… 물류 수송부터 안보까지 얽혀 복잡
“국제 판례 분석해 논리 무장해야”




중국 해경선 갑판 위에서 쌍안경을 든 남성이 무인도를 응시한다. 이어 물대포로 외국 선박을 제압하고, 선체를 충돌시킨 뒤 나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중국 해경이 1일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해상에서의 법 집행’ 영상이다. 중국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인근 순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해경은 댜오위다오 영해에 매우 가까이 접근했다”며 “이는 댜오위다오 영해 내 정례적 순찰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 해경은 지난해 센카쿠 열도 인근에서 357일간 해상 순찰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매일 무력시위를 벌인 셈이다. 중국의 무력시위와 일본의 반발이 반복되면서 동중국해에서 중일 간 충돌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은 “해양 경계 획정은 국가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자원은 물론 안보·군사적 가치까지 포함해 해양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고 했다.

● 한반도 주변 바다는 ‘국경선 없음’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바다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사례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이 지난달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설치한 대형 구조물 3기 가운데 관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고정식 구조물 1기를 이동시켰지만,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이번 구조물 이동이 “기업의 자율 조치”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긋고 있는 만큼 남은 구조물의 이전 가능성은 미지수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해양 경계선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 경계선은 흔히 ‘바다의 국경선’으로 불린다. 한 국가가 바다에서 행사하는 권리는 크게 주권이 미치는 영해(12해리·약 22.2km), 배타적경제수역(EEZ·영해 기선으로부터 200해리), 육지가 해저로 이어진 대륙붕(통상 수심 200m 이내)으로 나뉜다. 국가는 영해에서 육지와 같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EEZ에서는 해당 수역에서의 경제적 우선권을 가지며, 대륙붕에서는 해저 자원에 관한 우선적 권리를 행사한다. 해양 경계선은 해역의 성격과 협상 결과에 따라 영해·EEZ·대륙붕별로 각각 설정될 수도 있고, 하나의 단일선으로 설정될 수도 있다.

한반도 주변 바다의 국경선은 놀랄 만큼 제한적이다. 북방한계선(NLL)을 제외하면 제주도 동남부에서 대한해협으로 이어지는 ‘한일 대륙붕 북부구역 경계선’이 한국이 체결한 유일한 해양 경계선이다. 그 밖에 황해(서해), 동해, 제주도 남쪽 동중국해는 여전히 ‘경계선 없음’ 상태다. 이는 한중·한일 간 거리가 400해리 미만이어서, 서로의 EEZ와 대륙붕 관할권 주장이 겹치는 해역이 많기 때문이다.

한중은 1996년부터 해양 경계 획정을 위한 국장급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듬해 차관급 회담을 개최했지만, 양국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국은 2015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그친 차관급 협상을 올해 중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양국 간 서해상 경계선이 설정되어야 동중국해 등 기타 해역에서의 경계선도 논의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1974년에 대한해협 인근 북부 대륙붕 경계선을 합의하고, 동중국해에서는 남부 대륙붕 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JDZ 협정은 해양 경계선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50년간 해당 구역의 자원을 공동 개발하자는 성격의 협정이다. 한국과 일본은 1996년부터 2010년까지 해양 경계 획정을 위한 회담을 11차에 걸쳐 진행했지만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회담은 2011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 해양 경계선 둘러싼 ‘동상이몽’

경계선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아무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중일 3국이 모두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해양 경계선 설정의 ‘공평한 해결(equitable solution)’을 위해 당사국이 서로 합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평한 합의를 위한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각 국가는 최종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 어업 분쟁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잠정약정’을 운용하고 있다. 한중일 3국도 잠정약정으로서 각각 어업협정을 맺어 일정 수역의 어업 자원을 공동 관리해 오고 있다.

서해에서 한중 간 거리는 최장 343해리(약 635km), 최단 96해리(약 178km)다. 양국 모두 200해리 EEZ를 주장하고 있기에 서해에서 양국 EEZ는 겹칠 수밖에 없다. 해양 경계선 설정 원칙과 관련해 한국은 ‘중간선’에 기초한 이른바 ‘3단계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국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중간선을 먼저 설정한 뒤, 해안선 형태나 지형 같은 관련 사정을 고려해 일부 제한적으로 조정하고, 그 결과가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불리하지 않은지 점검하는 방식이다.

반면 중국은 첫 단계부터 양국의 해안선 길이, 육지 면적, 전통적 어업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평한 해결’이라는 같은 목적을 위해 한국은 ‘객관적 기준을 먼저 세운 뒤 조정하자’는 쪽이고, 중국은 ‘기준을 못 박지 말자’는 쪽에 가깝다. 협상 출발점부터 입장이 다르다 보니 기술적 논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중국해에서의 해양 경계선 설정은 더 복잡하다. 한국은 동중국해에서 EEZ와 대륙붕 경계선을 각각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1970년 제주 남쪽 200km 지점, 일본 오키나와 해구 앞 대륙붕인 제7광구에 대한 관할권을 선포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1969년 북해 대륙붕 사건에서 대륙붕이 육지 영토의 자연적 연장이라고 판결하면서 대륙붕 관할권에 대한 한국 측 주장이 유리해진 점이 영향을 끼쳤다.

반면 일본은 EEZ와 대륙붕을 구분하지 않고 중간선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5년 ICJ 판결에서 대륙붕이 육지로부터의 자연 연결이라는 개념을 부정한 이후 최근의 국제 판례는 중간선을 주장하는 일본 측 입장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1980년대 이후 JDZ 공동개발 및 협정 연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해에서 북한과 러시아는 영해·EEZ·대륙붕 등 해양 경계선을 모두 확정했다.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가 공통으로 접하는 해양 경계선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건 역시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해양 경계 획정 문제를 영유권 분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일 간 해양 경계 획정은 진척이 없는 상태다.

● 경계 미획정은 ‘상시 충돌 가능성’

해양 경계선이 정해지지 않아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군사적 충돌 등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이다. 같은 해역에서 관할권을 주장하는 상대국 해경이나 군함이 초계 활동을 벌여도 이를 제지하기 어렵다. 국제해양법 전문가인 이기범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해양 경계선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안보적으로 항시 충돌 위험이 열려 있는 상태”라며 “우발적 사건 하나가 바로 국가 간 충돌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가 대표 사례다. 중국은 2012년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이후 대(對)일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이 해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왔다. 중국과 일본의 해경 순시선과 어선이 얽히며 충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센카쿠 열도 일대에선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해경은 최근 5년간 함정 55만 척과 항공기 6000대를 투입해 해상 권익 보호 임무를 수행했다고도 밝혔다.

특히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남중국해는 미중 패권 대결의 최대 화약고로 꼽힌다.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이 각자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해역에서 중국은 인공섬을 건설하고, 이를 군사기지화하면서 남중국해의 내해화(內海化)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 전단을 진입시키는 ‘항해의 자유’ 작전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동에서 출발한 원유는 인도양을 거쳐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통과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중국이 군사훈련을 이유로 지금보다 넓은 범위의 항행을 제한하면 중동에서 오는 에너지 수송선은 우회할 수밖에 없다. 비축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회가 길어질수록 에너지 공급 차질과 물가 상승이 누적돼 한국 경제에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본 홋카이도 북쪽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선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 분쟁 중이다. 이 섬들을 실효 지배 중인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과 패전국 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러시아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서명을 거부한 만큼 현재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쿠릴열도에서 군사훈련을 확대하고, 일본은 반발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 “국제 판례 분석해 논리 강화해야”

해양 경계선은 한 번 설정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해양 자원과 안보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전문가들은 획정을 빠르게 하는 것보다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요한 것은 협상력의 내실이다. 국제 판례를 축적·분석해 상대 논리를 반박할 근거를 준비하고, 우리 주장에 유리한 사례를 꾸준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해양 경계 획정에서 ‘공평한 해결’이라는 원칙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실제 협상에서는 국제 판례와 관행으로 다져진 논리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며 “최신 판례를 계속 연구하고 발굴해 우리 주장에 유리한 근거를 축적하는 것이 협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계가 확정되기 전 단계의 관리도 중요하다. 국제법은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잠정조치수역에서 당사국 모두에게 일정한 ‘자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김현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국가는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 합의를 위태롭게 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면서 “이 같은 원칙에 비춰 볼 때 서해 구조물 설치처럼 상대국의 일방적 행위가 국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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