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법치(法治)보다 무거운 염치(廉恥), 그 윤리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기고/인병식]

입력 | 2026-02-05 10:30:00

인병식 성신여대 수학과 명예교수


해발 3700m,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목격한 장면은 경이로움을 넘어선 영적 충격이었다. 성스러운 불단 앞, 산더미처럼 쌓인 시주금 곁에는 그 흔한 감시자도, 탐욕을 막아설 유리 차단막도 없었다. 순례자들은 거스름돈이 필요하면 스스로 그 돈더미에서 필요한 만큼을 꺼내 갔다. 누구도 한 푼을 더 가지려 탐욕을 부리지 않았고, 누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양심은 상황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자율적 질서이자 신성과 맞닿은 ‘염치(廉恥)’였다. 감시가 없어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그 정갈한 마음이야말로 그 척박한 땅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이었다.

반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자부하며 K-컬처의 화려함을 전 세계에 뽐내는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심의 실종’이라는 거대한 정신적 공동(空洞)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공적 규범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정치권이 부끄러움을 잊은 채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현실은 국민에게 깊은 자괴감과 불안감을 안긴다. 물질적 풍요는 정점에 달했을지 모르나, 공동체를 지탱하는 내면의 윤리 의식은 고갈돼 가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당의 지위는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책임지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정치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법적 판단이 예상되면 입법권을 동원해 이를 무력화하려 하거나, 사법 시스템 자체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검사를 탄핵의 심판대에 세우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장외 집회를 정당화하는 풍경은 이미 일상이 됐다. 중대한 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이들이 ‘정치적 지지가 법보다 우선한다’는 오만함으로 사법 독립을 위협하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행이자 헌법정신에 대한 도전이다.

맹자는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설파했다. 염치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벽증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는 내면의 마지막 안전장치이며, 성문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사회적 틈새를 메우는 윤리적 접착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권은 명백한 과오 앞에서도 정교한 궤변과 ‘내로남불’식 논리로 이를 정당화하는 뻔뻔함을 일종의 정치적 기술이나 훈장으로 추앙한다. 이러한 염치의 상실이 극단적 진영 논리와 결합하면서, 정치는 성찰과 타협이 거세된 채 상대를 멸절시켜야 할 ‘증오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법치주의의 본질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에 있다. 통치자가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통치 권력조차 법의 준엄한 테두리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실현하는 힘은 결국 인간의 양심, 즉 염치에서 나온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할 줄 알고, 스스로를 경계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지도자가 당연해지는 사회라야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권력이 법의 머리 위에 서려는 순간, 그 사회의 정의는 무너지고 만다.

이제 정파적 승패나 진영의 이익보다 양심에 엄격해지는 ‘염치의 회복’이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준엄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화려한 수식어와 말잔치가 아닌, 잘못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염치가 바로 서야 비로소 법치가 숨을 쉬고, 법치가 바로 서야 국격(國格) 또한 반석 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병식 성신여대 수학과 명예교수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