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연출가 첫 토니어워즈상 채브킨
여성 화가의 상처와 욕망 그린
새 뮤지컬 ‘렘피카’ 한국무대 올려
강렬한 시각 효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렸던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연출한 레이철 채브킨(사진)은 2019년 이 작품으로 여성 연출가 최초로 토니어워즈 연출상을 수상한다. 그런 그가 연출한 새 뮤지컬 ‘렘피카’가 미국 브로드웨이 첫 공연을 마치고 3월 한국 무대에 오른다.
최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채브킨은 “2021년 한국의 ‘하데스타운’ 연습 기간에 만삭이어서 직접 오지 못했다”며 “이번엔 ‘꼭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짐을 쌌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렘피카’ 공연 모습.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렘피카’는 1920∼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폴란드 출신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예술을 그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파시즘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혼돈 속에서도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지켜낸 인물이다. 채브킨은 이 여정을 단순한 전기극이 아닌 “혼돈 속 인간의 얼굴을 응시하는 여정”으로 재해석했다. “렘피카의 완벽하게 그려진 얼굴 속에는 시대의 상처와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데스타운’으로 기존 뮤지컬 문법을 흔든 그녀답게 ‘렘피카’도 독특함으로 가득하다. 무대와 객석을 서로의 시선이 닿는 ‘한 장의 캔버스’라고 묘사한 그는, 첫 장면을 관객에게 말을 거는 노인의 독백으로 열리도록 설정했다. 또 주인공이 화가인 만큼 시각적인 화려함이 있으며 깊은 감정선, 진솔한 사랑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채브킨은 특히 이번 한국 공연의 연습을 지켜보며 배우들의 ‘진짜 감정’을 마주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과 사랑, 욕망, 절박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물이 났어요. 이 작품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공연이에요.”
그녀가 특히 주목하는 건 ‘여성의 서사’다. “타마라의 인생엔 악당이 없어요. 오직 시간과 욕망, 스스로의 한계만이 있었죠. 우리는 여전히 선악 구도나 영웅주의적 시선에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어요. 이 작품이 그 균열을 비추길 바랍니다.”
채브킨은 예술이 해야 할 역할이 ‘저항’이라고 답했다. 렘피카가 시대의 폭력과 억압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인물이었듯,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예술가의 목소리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국인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트럼프 정부는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주민에게서 나라를 탈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죠.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 영향을 미칩니다. ‘렘피카’에는 인류가 어떻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또 복합적인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담으려고 했어요.”
‘렘피카’는 2024년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무대디자인상 등 3개 부문에 후보에 올랐다. 드라마 리그 어워즈 ‘최우수 뮤지컬 프로덕션’ 후보에도 올랐다. 한국 버전의 ‘렘피카’에서 타마라 드 렘피카 역은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가 맡았다. 렘피카의 뮤즈 라파엘 역은 차지연, 리나, 손승연이 맡았다. 공연은 3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개막하며 6월 21일까지 이어진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